‘볼란테, 애플워치SE44, 아이폰XS, 에어팟, 아이폰12미니, 루이비통’

1일 오후 3시. 당근마켓, 중고나라와 함께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 ‘빅3′로 불리는 번개장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니 이런 단어가 인기 검색어에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명인이 만든 의류 브랜드 볼란테를 비롯해 전부 특정 브랜드나 그 브랜드의 대표 상품이었다. 같은 시간 당근마켓 인기 검색어는 ‘의자, 부동산, 자전거, 아이패드’ 였다.

번개장터에는 취향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람들이 모인다. 아이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이폰12 미니를 사야 하고, 루이비통 가방이 아니라 루이비통 모노그램 라인의 특정 제품을 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유행에 따르기보다 나만의 특별함을 원하는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한 말·1981~2010년생)의 사용자 비중이 60~70%로 높고, 취향에 민감한 사람들이 번개장터를 찾기 때문이다.

번개장터는 이런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달 모바일 앱을 브랜드 중심으로 바꿨다. 그동안 사용자들이 제품군별로 중고거래 상품을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특정 브랜드를 팔로우하고 그 브랜드 제품을 모아볼 수 있다. 현재 팔로우 가능한 브랜드는 900여개. 거래가 활발한 패션·잡화, 디지털, 가구 뿐 아니라 자전거, 캠핑, 등산 제품 브랜드도 포함되며 향후 확대할 예정이다. 팔로우하거나 많이 검색한 브랜드를 앱 메인화면 메뉴에 자동 배치하는 개인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정용준 최고제품기획자(CPO). / 번개장터 제공

이번 앱 개편을 총괄한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사옥에서 가진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단순히 근처에서 적당한 물건을 구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중심으로 탐색과 소비를 하는 중고거래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아이가 커서 못쓰게 된 자전거를 5만원에 팔아야 할 때와 500만원짜리 자전거를 200만~300만원에 구매하고 싶을 때는 마음가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며 “중고거래 시장이 커질수록 커머스 형태의 플랫폼으로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CPO의 발언엔 중고거래 커머스로서 경쟁사인 당근마켓을 뛰어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번개장터는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중고나라와 함께 중고거래 빅2로 불렸으나 2018년 당근마켓이 전국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치열한 2·3위 경쟁을 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 기준으로는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이 2000만명을 돌파해 번개장터(1600만명)를 앞선다. 연간 거래액은 작년 기준 중고나라가 5조원으로 가장 많고 번개장터가 1조3000억원, 당근마켓은 1조원(업계 추정) 수준이다.

1978년생인 정 CPO는 작년 4월 번개장터에 합류하기 전까지 네이버(NAVER(035420)), 카카오(035720)를 거쳤다. 카카오에선 2012년 첫 SNS인 카카오스토리를 성공적으로 런칭시켰고 SNS사업본부장(부사장)을 지냈다. 번개장터는 지난해 사모펀드인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에 인수된 뒤 티몬 출신 이재후 대표 체제로 전환하고, 정 CPO와 유튜브 출신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잇따라 영입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다음은 정 CPO와의 일문일답.

번개장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홈 화면 변천사. 가장 오른쪽에 있는 화면이 이번에 개편한 앱 홈 화면이다. / 번개장터 제공

-브랜드 중심으로 앱을 개편한 배경은.

“우리는 번개장터의 핵심 사용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취향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10만원 밖에 없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50만원짜리 셔츠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그 가격대 상품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이 핵심 사용자들이 브랜드에 민감하다. 번개장터 인기 검색어 50개 중 절반이 브랜드다.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했고 그게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앱에서 브랜드를 추천하고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했다.”

-브랜드 추천 기능을 중고 거래 앱에서 구현하기가 어렵나.

“브랜드를 추천하려면 앱에 업로드 되는 상품이 브랜드별로 잘 분류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전문 셀러가 아니기 때문에 상세 정보를 구체적으로 입력하지 않는다. 100만원짜리 상품을 올리면서 ‘○○백화점에서 작년에 샀어요~’라고 설명을 한줄 쓰는 식이다. 이들에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면 피로감을 느껴 앱에서 이탈할 수 있다. 때문에 판매자가 제품을 올리면, 브랜드별로 상품이 자동 분류 되도록 했다.

기존 커머스는 어떤 물건이 잘 팔리면 재고를 많이 준비해둘 수 있으므로 그 제품에 관심이 있을 만한 사용자에게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 거래 플랫폼에선 어떤 물건이 인기가 있어도 재고가 하나 뿐이다. 인기가 많은 제품일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 사용자가 최대한 관심을 가질 만한 비슷한 제품을 추천해야 한다.

이때 비슷하다고 아무거나 추천하면 안된다. 개발자들은 이를 ‘거리값’이라고 표현한다. 명품 브랜드 중에서 샤넬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루이비통을 추천한다고 소비자가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이돌 굿즈의 경우 함부로 추천했다가 사용자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BTS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다른 아이돌을 추천하면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있다. 추천의 정확도가 상당히 중요하다.”

-경쟁사인 당근마켓이 커머스와 커뮤니티를 동시에 표방하는 것과 달리 번개장터는 커머스에 집중해 상대적으로 앱 체류시간이 짧을 수 있다(거래를 하고 금방 나가기 때문에). 이번 앱 개편을 통해 사용자들이 앱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까.

“한국은 중고거래 시장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시간이 지나면 거래에 신중한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고 내가 원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앱에 자주 들어가서 볼 수 밖에 없다. 커머스 활동을 위한 체류시간을 늘리는 게 목표다.”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진품, 가품 관리가 더욱 중요할 것 같다.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가품의 패턴이 보이면 제품 등록을 보류하거나 경고를 주거나, 아예 삭제 하기도 한다. 향후에는 전문가를 사내에 고용해 정·가품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개인 간 거래인 만큼 사기를 막기 위한 장치도 필요할 텐데.

“번개장터는 지난 2018년 중고거래 플랫폼 가운데 가장 먼저 안전결제 시스템인 번개페이를 도입했고 계속 고도화 하고 있다. 소비자들끼리 현금을 주고 받지 말고 플랫폼을 거쳐 거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번 앱 개편에서 소비자가 번개페이로 결제가 가능한 상품만 모아서 볼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번개페이를 통한 결제액은 올해 상반기 1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90% 늘었고 올해 연간으로 250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번개장터는 MZ 세대 사용자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들의 거래 특성은.

“스마트폰에서 가장 싫어하는 기능이 통화라고 하는 세대 아닌가. 비대면 모바일 거래에 상당히 익숙하다. 연령대를 10대로 낮추면 동네 거래에 대해선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쿨거래(오랜 흥정 없이 거래가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가 빈번하다. 이미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세를 알기 때문에 흥정이 덜 하고 거래가 굉장히 빨리 이뤄진다. 낯선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를 끌고 싶어하지 않는다.”

-중고 거래가 불황의 상징일 때도 있었는데, MZ 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다른 개념인 것 같다.

“MZ 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원하는 물건을 찾는 수단 중 하나다. 중고 거래가 활발한 물건 중 하나가 한정판 스니커즈인데, 공급이 제한된 물건을 가졌다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현금화도 가능하다.”

-MZ 이외 세대(35세 이상)들도 온라인, 모바일 쇼핑의 핵심 소비자 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MZ 세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취향이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그런 취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게 목표이고 다행스럽게도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캠핑, 자전거, 골프 등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번개장터 사용자 가운데 35세 이상,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다. "

번개장터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연령별 사용자 비중은 25세 미만이 40%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25~34세 27% ▲35~44세 18% ▲45세 이상 15% 순이다. 지난 1년 간 번개장터 가입자 수는 40대가 전년 동기 대비 1062% 늘었고 50대는 2174% 증가했다.

-올해 거래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카테고리는 무엇인가.

“스타 굿즈 거래가 전년 대비 230% 증가했다. 다음으로 ▲CD·DVD·LP가 210%, ▲캠핑 160% ▲낚시 156% ▲골프 120% ▲등산 103% ▲레고·블럭 76% 등이다. 지난 3월 중고 골프용품 플랫폼 에스브릿지와 중고 의류판매 마켓인유를 인수하면서 상품 구색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향후 국내 중고 거래 시장 전망은. 롯데쇼핑이 중고나라에 투자하고 GS리테일은 당근마켓과 협업하는 등 대기업들의 관심도 많은데.

“중고 거래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계속 증가할 것 같다. 번개장터처럼 시장 반응에 빨리 반응할 수 있고 고객을 이해하자마자 제품에 반영할 수 있는 기업이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고 거래 시장에서 번개장터가 3위로 분류된다.

“포텐셜(잠재력)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할 게 아직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MZ 세대 마음 속엔 넘버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들에게 PC는 엄마 아빠의 물건이고 모바일이 메인이다. 번개장터는 중고 거래 플랫폼 가운데 가장 먼저 앱을 출시했기 때문에 MZ 세대에겐 넘버원 플랫폼이다. 이런 사람들을 앞으로 늘리고 싶고 실제 성과도 나고 있다.”

-앱 개편 이후의 과제는.

고객들이 팔로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앱 개편 이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A 브랜드도 카테고리에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오고 있다. 나의 취향을 플랫폼이 받아주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MZ 세대의 특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