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신규 출점을 앞둔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동탄점의 개장을 이달 20일로 확정하고 홍보 중인 데 반해, 신세계백화점 대전점은 아직 공식 개장일을 잡지 못해서다. 이들 점포는 두 백화점이 각각 7년, 5년 만에 출점하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오는 20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신규 점포를 연다. 지하 2층에서 지상 8층, 연면적 24만6000㎡로 경기도 최대 규모다. 롯데쇼핑(023530)은 환승센터를 중심으로 백화점, 영화관 등을 입점한 ‘롯데타운’을 조성해 수도권 남부를 공략할 방침이다.

반면 신세계백화점이 대전에 문을 여는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은 아직 개장일을 잡지 못했다. 대전시 유성구청에 따르면 신세계는 오는 27일 이 점포를 개장할 예정이지만, 백화점 측은 “개장일은 미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다.

그래픽=정다운

이는 대전마트협동조합이 사업조정을 신청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벤처부는 이번 주 중 양측을 불러 개별 면담과 자율조정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아직 세부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며 “회의 결과에 따라 해당 사업의 일시 정지를 권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百, 대전 상인회와 협상 결렬 시...과태료, 사업조정 처분 위기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은 충청 지역 터줏대감인 갤러리아 타임월드점과 택시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재계 7위인 한화(000880) 김승현 회장과 재계 11위인 신세계(004170) 정유경 총괄사장의 자존심 대결로 주목받았다. 지하 5층, 지상 43층 규모(건물 면적 약 28만㎡)로 2016년 대구점 이후 5년 만에 개관하는 신세계의 13번째 점포다. 투자금만 총 60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개장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신세계가 공식 출점일을 밝히지 않자, 업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함께 최근 대전마트협동조합이 중기부에 사업조정을 신청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조정제도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 따라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과 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중기부가 자율협의를 중재하거나 대기업의 사업인수와 개시, 확장 등을 연기하거나 축소를 권고할 수 있다.

업계에선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의 개장일이 임박한 만큼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점포 개장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개장 후 중기부가 지정한 기간까지 상인회와 협상을 완료하지 못하면 신세계는 과태료와 함께 사업조정 처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것일 뿐 사업조정 신청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신세계백화점 대전 엑스포점 조감도./ 신세계

◇제주 프리미엄 아웃렛도 상생법 부딪혀 개장 연기

신세계 계열사인 신세계사이먼이 제주에 출점하는 제주 프리미엄 아웃렛도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출점 시기가 늦춰지는 모양새다. 신세계사이먼은 당초 지난달 22일 제주신화월드 메리어트관 지하 1,2층(운영면적 8834.54㎡)에 아웃렛을 출점할 예정이었으나, 지역 상인들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이곳은 제주관광공사 시내면세점이 사업 부진으로 철수한 곳이다.

제주칠성로상점가, 서귀포상가연합회 등 제주도 내 8개 상인 단체들은 신세계 아웃렛이 들어올 경우 상권에 피해를 준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신세계사이먼에 ‘프리미엄 아웃렛’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과 제주시 중복 브랜드 입점 시 상인 단체의 동의를 얻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조정 회의가 세 차례 진행되도록 합의를 찾지 못하자, 중기부는 ‘신세계사이먼의 제주신화월드 입점이 도내 소상공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실태조사 용역에 착수했다. △제주지역 의류 도·소매업 현황 조사 △아웃렛 입점에 따른 인근 상권 및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중재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양측은 이번 주 중 4차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세계사이먼 측은 “지역 상인들과 전향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신화월드 내에 있던 제주관광공사 면세점 전경. 신세계사이먼은 이곳에 프리미엄 아웃렛을 조성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유통 대기업의 대규모 점포 설립 시 사업조정 절차는 ‘통과의례’처럼 이뤄져 왔다. 앞서 갤러리아 광교점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롯데백화점 동탄점 등도 사업조정 절차를 거쳤다. 대부분은 유통사가 상생협력기금 조성이나 보상금, 시설 개보수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출점 인허가를 받은 후에도 상생법으로 다시 발이 묶이는 ‘이중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를 악용해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지역 상인들에게 사업조정 신청을 부추기거나, 사업조정을 철회한 후에 재신청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행 사업조정 제도에선 사업조정을 철회하더라도 개점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법규라도 같은 규제가 이중으로 부과되면 기업은 사업하기가 힘들어진다”며 “출점에 있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불합리한 규제는 향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