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마켓컬리 신선물류센터 전경. /윤희훈 기자

"지게차는 무조건 피하세요."

지난 8일 오후 7시,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마켓컬리 김포물류센터는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근로자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가 지난 3월 개관한 신선 물류센터로 국내 최대 규모(8만2644㎡)다.

신축 물류센터답게 근무환경은 쾌적한 편이었지만, 안전 교육은 소홀했다. 카트 끄는 법과 지게차와의 충돌을 주의하는 교육이 진행됐지만, 화재 등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 요령에 대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와 함께 쓴 안전준수서약서도 직원의 재촉으로 읽어볼 새도 없이 서명해야 했다. 나중에 보니 '안전교육을 10분간 이수했다'는 내용의 서명이었다.

◇화재 교육 없이 안전준수서약서 서명부터

영상 3도 수준으로 유지되는 저온 물류창고에선 외투와 안전화 등 보호장비가 필수다. 안전화의 경우 개인 제품을 준비하지 못하면 공용품을 지급했지만, 외투는 개인 지참이 원칙이었다. 이날 처음 출근한 한 근로자는 외투를 준비해 오지 않아 관리자로부터 검정 후드 점퍼를 받아 입고 근무했다.

기자는 개인용 단말기(PDA)가 할당하는 물건을 찾아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집품(피킹) 업무를 담당했다. 현장에 배치 된 후에도 업무 요령만 알려줄 뿐 화재나 비상 상황 시 대피 요령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소화기나 비상구의 위치도 알 수 없었다.

신입 근무자가 아는 유일한 출입구는 강당으로 들어가는 문 뿐이었다. 물류센터에서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건, 마감 정리 작업을 하고 폐상자를 버리러 갈 때 처음 알았다. 만약 화재가 발생했다면 대피한다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센터 안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 지게차가 움직이는 소리, 음악 소리 등이 섞여 매우 시끄러웠다. 기자와 함께 일했던 한 근로자는 지게차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 부딪힐 뻔 했다. 일하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물류센터 관련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조선비즈 기자들이 체험한 물류센터는 안전불감증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유통업체의 속도 경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물류센터 시스템의 허점 등이 결합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비대면 쇼핑에 급증한 물류센터…1년 새 390개 증가

19일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전국에 운영 중인 물류센터는 4635개로, 집계가 시작된 2012년(1666개)에 비해 2969개가 늘었다. 연간 증가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신규 등록된 물류센터 수는 732개로, 2019년(342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연면적 1만㎡가 넘는 대형물류센터도 2019년 32개에서 작년 70개로 배 이상 증가했다.

물류센터의 증가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과 비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쇼핑 연간 거래액은 2015년 55조 원에서 2019년 135조 원, 2020년 161조 원으로 급증했다. 택배 물동량도 2015년 18억1000만 개에서 지난해 33억7000만 개로 매년 20% 안팎의 증가세를 보였다.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제공

특히 '배송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센터는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로켓배송으로 속도 경쟁을 주도한 쿠팡은 전국에 170여 곳의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으로 약 5조 원을 조달한 후엔 물류망 확충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쿠팡은 1조 원 이상을 들여 전북, 경남, 충북, 부산 등에 신규 물류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국내 온라인 쇼핑 점유율 1위인 네이버도 CJ대한통운을 비롯해 다양한 물류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물류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들도 물류센터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유치 경쟁에 한창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운수보관업(13.4)의 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6.1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고용유발계수도 운수보관업이 8.28로 제조업(4.68)의 배에 달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물류센터 하나를 유치하면 수천 명의 고용효과를 낼 수 있다"며 "제조공장의 경우 채용 규모가 수백 명에 불과한 데다, 업황이 어려워 유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방화벽은 '완화', 소방 점검은 '셀프'…안전관리 허술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 달리 물류센터의 안전 관리는 미흡한 실정이다. 화재 시 불길이 번지는 걸 막아주는 방화벽의 경우 건축법 시행령 제57조는 실내 공간 1000㎡마다 방화구획을 편성해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물류센터와 같은 창고 시설은 내부에 컨베이어 벨트 등 자동화 설비가 있다는 이유로 예외를 둔다.

이번에 대형 화재가 발생한 덕평물류센터의 경우 방화 구획이 최대 1만㎡로 정해졌다. 일반 건축물보다 방화벽이 10분의 1 수준만 설치된 셈이다.

화재감지설비 기준이 선반(Rack)식 물류창고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높은 층고에 다양한 물건을 적재하는 물류센터에선 화재 시 발생하는 열과 연기를 감지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려 조기 진압이 어렵다는 것이다.

최돈묵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기 위해선 기존의 면적별 기준이 아닌, 선반의 높이와 저장되는 물품의 위험도 등을 고려해 선반 중간에 화재감지기를 설치하도록 기준을 바꿔야 한다"며 "스프링클러 역시 저장 물품의 위험도에 따라 선반의 각 단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설주가 소방시설을 점검해 관할 소방서에 보고하는 '자체소방점검' 제도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지난 2월 자체 점검을 통해 소방시설 결함 227건이 발생한 것으로 이천소방서에 보고됐다.

이후 쿠팡은 이천소방서의 지시에 따라 해당 센터에 대한 시정 조치를 완료했고, 이는 서면으로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뒷받침한 풀필먼트 서비스 센터. /쿠팡

◇화재감지기 설치 기준 바꾸고 안전관리 규정 강화해야

물류센터의 안전 관리가 느슨한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적재하는 '창고'로 인식돼서다. 하지만 이커머스 물류센터는 제조업이나 상업용 오피스 못지않게 많은 근로자가 일한다.

특히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을 뒷받침하는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Service) 센터의 경우 다양한 물건을 창고에 미리 보관해 두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출고하기 때문에, 주문량이 늘어날수록 근무 인력도 늘어난다.

단기간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도 많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안전관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물류 산업은 유통, 물류, IT(정보기술) 등 여러 산업을 아우르는 만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지킬 수 있도록 법으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며 "예산, 시설, 교육, 관리자 등 세부 계획을 철저히 세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규제 강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물류창고 설립 기준 및 소방기준을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2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축법과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의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물류센터 지하층 면적을 건축물 용적률에 포함하고, 화재 강도가 높은 물류창고는 내화 구조의 벽으로 구획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기존 시스템을 점검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 부소장은 "선반식 창고의 스프링클러를 화재 조기 진압용(ESFR·Early Suppression Fast Response) 헤드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ESFR은 국내에선 생산되지 않아 표준형보다 가격이 10~20배가량 비싸고 유지·보수도 어려워 표준형 스프링클러를 개량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의 법을 기반으로 자위소방대와 방제팀의 역량을 높여 초동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