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켜 주문한 지 8분 만에 메로나가 집 앞에 도착했다. 30도가 훌쩍 넘은 고온다습한 날씨에도 메로나는 약간 녹았을 뿐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제 시간 단위의 빠른 배송 전쟁을 논하는 시대가 저물고 분·초 단위 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쿠팡이츠 마트에서 주문한 물품이 8분 만에 도착했다. 앱에 표시된 예상 배달 소요시간 14분보다 훨씬 빨랐다. / 이현승 기자

14일 오전 10시를 약간 넘은 시간. 서울 송파구 모처에서 쿠팡의 모바일 배달 앱 쿠팡이츠를 통해 메로나, 맛있는우유(500ml), 바나나(2개입)를 시켜봤다. 최소 주문금액이 없지만 배달비 2000원이 붙어 5900원을 결제했다. 메로나 가격은 850원으로 마트에서 5개 묶음을 구매할 때(개당 500원)보단 비쌌지만 편의점 판매가(900원)보다는 저렴했다. 별다른 요청이 없어도 배달기사는 문 앞에 주문물품을 내려놓고 벨을 누르고 떠났다.

쿠팡이츠는 그동안 음식점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만 제공하다가 최근 송파구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마트 배송 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송파구 소재 창고형 물류거점에 먹거리, 공산품 등을 비치해 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전담 오토바이 배달기사를 통해 전달한다. 앞서 모바일 배달 앱 경쟁사인 배달의민족(배민)과 요기요가 각각 B마트, 요마트라는 이름으로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다.

쿠팡은 이 서비스가 현재 테스트 단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서비스 대상 지역이 정확히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송파구 주민이라고 해도 사는 동네에 따라 마트 서비스를 이용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자가 배달을 시킨 곳은 송파구 대단지 아파트인 헬리오시티 인근이었다.

배달 가능시간도 유동적이다. 이날 오전 9시~오후 1시까진 주문이 가능했지만 오후 1시 이후론 불가능 했다. 앱 내에서 마트 메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 'B마트'에서 주문한 물품이 26분 만에 도착했다. / 이현승 기자

테스트 개념인 쿠팡과 달리 배민과 요기요는 생필품 배달을 정식 서비스로 운영 중이다. 서비스 지역은 배민 B마트는 서울·경기·인천이고 요기요 요마트는 서울 일부 지역이다.

쿠팡과 달리 B마트와 요마트에는 최소 주문금액이 있다. 배민은 1만원, 요기요는 5000원이고 둘다 1만원 이상 주문을 하면 배달비가 없다. 아이스크림, 우유, 과일, 휴지, 물티슈 5개 품목을 하나씩 주문했다. 요마트는 22분, B마트는 26분 만에 주문한 품목을 받아볼 수 있었다.

요기요 요마트에서 배달한 물품이 22분 만에 도착했다. / 이현승 기자

같은 서비스인데 쿠팡이츠 마트 배달 소요시간이 요마트, B마트의 3분의 1에 불과한 건 주문품목이 적어서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팡은 최소 주문금액이 없어 3개 품목만 주문했기 때문이다.

회사별로 판매 품목이 달라 완전히 같은 제품을 주문할 수는 없어 최대한 비슷한 품목으로 가짓수 5개를 맞춰 시켜봤다. 오히려 시간이 단축됐다. 우유, 바나나, 아이스크림, 키친타월, 물티슈를 배달 받는 데 단 5분이 걸렸다.

쿠팡이츠 마트의 배달 속도가 월등히 빠른 건 △배민, 요기요와 달리 직고용한 배달기사를 물류거점에 상주시키고 △배달 가능지역이 송파구 일부 지역으로 한정돼 있어 배송 반경이 좁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앞서 나갔듯, 쿠팡이츠도 '업계에서 가장 빠른 배달 앱'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배달기사를 집중 투입하고 배송지역을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마트는 취급 품목이 7000여개에 달해 선택 폭이 넓다는 게 장점이다. 가령 과일은 냉동을 제외한 제품 가짓수가 70여개에 달해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같은 품목이 쿠팡이츠 마트는 20여개 정도다. 요마트는 과일·채소를 다 합해 20여개에 불과하고 전부 냉동 제품이다. B마트는 서울, 경기, 인천에 30여개 창고형 물류거점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 요마트는 10개, 쿠팡이츠 마트는 한 자릿수의 물류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요마트는 판매 품목이 적은 대신 일부 품목 가격을 경쟁사 대비 10% 이상 낮췄다. 잘 팔리고 유통기한이 긴 일부 제품을 대량 구입해 판매 단가를 낮추는 전략을 쓴다.

가령 농심 육개장 사발면(86g)은 쿠팡이츠 마트와 B마트에서 각각 840원, 890원에 판매하는데 요마트에선 700원에 판다. CJ 컵반 사골곰탕국밥(166g) 판매가는 쿠팡이츠 마트와 B마트가 각각 3220원, 3390원이고 요마트는 2800원이다. 편의점 CU와 GS25 판매가 4200원과 비교하면 40% 싸다.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3사와 편의점 2사 서울 송파구 배달 서비스 비교

3개 업체는 최근 소비자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의식한 듯 일회용 포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쿠팡이츠 마트는 비닐봉투 대신 종이가방에 주문 물품을 담아왔다. B마트는 재생수지로 만든 비닐봉지를 썼고 요마트는 아이스크림 등 냉동 제품을 배송할 때 비닐봉투 얼음팩이 아닌 종이 얼음팩을 넣어 상품을 보냈다.

퀵커머스의 승부처인 동네 상권을 책임지고 있는 편의점 업계는 쿠팡, 배민, 요기요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배달 서비스를 확대하는 추세다.

이날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의 네이버 배달 서비스와 GS리테일의 자체 배달 앱 우리동네 딜리버리(우딜)를 통해서도 먹거리를 주문해 봤다. 외부 배달기사가 주문지와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 물품을 받아 전달하는 방식이다. 주문부터 배달까지 CU는 36분, GS25는 1시간이 걸렸다. GS25는 배달기사가 늦게 배정 돼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편의점의 배달 서비스는 1만5000여개 매장을 물류거점화 할 수 있어 전국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쿠팡, 배민, 요기요가 수도권 동네 상권을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력 고객층이 도심 내 1~2인 가구로 겹치는 만큼 판매 품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염규석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쿠팡이 창고형 매장, 이른바 다크스토어를 서울에 25개만 확보해도 서울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소형 매장이다 보니 회사 입장에선 로켓배송용 물류센터에 비해 비용 부담이 적다. 창고형 매장은 전담 직원이 단순 업무를 하기 때문에 단기 계약직을 채용할 가능성이 높고 고용 유발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한국프랜차이즈학회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9년 B마트에 이어 작년 9월 요마트가 서비스를 시작하고 석달 뒤인 12월 서울 강남구·관악구·영등포구 편의점 매출이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 매출 타격이 컸는데 강남구는 12월 한달 간 15.02% 줄었고 관악구는 9.09%, 영등포구는 11.27% 감소했다. 조 교수는 "B마트가 처음 출점한 2019년 11월에는 영향이 미미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요마트가 출점한 이후에는 파급효과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인 편의점이나 수퍼마켓과 제휴해 온라인 주문 물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배송해주는 이른바 마이크로 딜리버리 서비스와 달리, 도심 곳곳에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물품 보관·포장·배송·재고 통합 관리 시설)를 구축하고 여기에 자신의 책임하에 상품을 사전 주문해 보관하고 있다가 온라인 주문에 대응하는 서비스는 일종의 소매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업태임에도 불구하고 유통산업발전법상 규제를 받는 편의점과 달리 쿠팡이츠 마트, B마트, 요마트는 규제 밖에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GS25에서 주문한 상품들. 육개장 오른편에 작은 과자가 덤으로 왔다. 과자에는 "주문해줘서 고맙다"는 자필 쪽지가 붙어있었다. / 이현승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CU에서 네이버를 통해 주문한 제품들. 가운데 방울토마토에 "주문해줘서 고맙다"는 자필 쪽지와 함께, 그 옆 콜라 2개가 덤으로 딸려왔다. / 이현승 기자

편의점 배달은 퀵커머스에 비해 배송시간은 오래 걸리고 품목 수는 적지만 뜻하지 않은 '덤'을 받을 수도 있다. 이날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CU는 콜라 2개를, GS25는 작은 과자 2개를 덤으로 주면서 '주문해줘서 고맙다'는 쪽지를 넣어줬다.

편의점 행사 상품인지 궁금해 두 점포에 전화를 걸었더니 "행사 상품은 아니고 감사 선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가맹점주가 경영하기 때문에 퀵커머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서비스를 조정할 수 있어서 생기는 뜻밖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