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없이도 살 수 있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으로 고속 성장하던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소비자 불매 운동으로 위기에 처했다. 잇따른 배송기사 사망 사고에 이어,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하면서 소비자들의 반발 심리가 커진 탓이다.
화재 발생 5일째인 21일, 트위터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쿠팡 불매 및 탈퇴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쿠팡 탈퇴'를 인증하거나 탈퇴 방법 등을 공유하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불매 운동이 시작된 19일에는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단 글이 17만 여건이 올라오며 대한민국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쿠팡 측은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내고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숨진 김동식 소방령 유족과 직원에 대한 지원대책을 발표하는 등 불매 운동의 확산을 막는 데 고심 중이다.
불매운동 확산의 원인은 김범석 창업자의 잇따른 '책임 회피 꼼수' 의혹에 있다. 지난 1년 간 쿠팡 배송 및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9명에 달했지만, 김 창업자는 사과보다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배송기사 과로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았을 때 엄성환 쿠팡풀필먼트 전무를 참석시켰고, 그해 12월 공동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이어 이달 11일에는 '해외 시장 전념'을 이유로 한국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 이에 따라 김 창업자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의 모든 지위는 내려놨지만, 쿠팡 한국 법인을 100% 지배하는 미국 상장사 쿠팡Inc의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회 의장직은 계속 유지한다.
이 같은 사실은 화재 발생 5시간 후인 17일 11시, 쿠팡의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됐다. 소비자들은 쿠팡 의결권 76%를 갖고 사실상 쿠팡을 지배하는 김 창업자가 국내 쿠팡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번 소비자 운동에 쿠팡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하고 있다. 남양유업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 GS리테일의 '남혐 논란' 등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운동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김 창업자는 창업 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을 벤치마킹해 지금의 쿠팡을 일궜다. 쿠팡의 성장을 이끈 '로켓배송' 등 모든 서비스는 '고객 집착'에서 나왔다. 회사의 모토 역시 "쿠팡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다.
하지만 아마존이 그랬듯, 쿠팡 역시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가 되며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을 초래했다. 아마존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39%)을 지녀 불매 운동에 별 타격이 없었지만, 쿠팡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해 불매 운동이 길어질 경우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택배 기사 과로사 등 쿠팡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번 화재로 한꺼번에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은 소비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2~3배 이상의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고 획기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시장 지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