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각규의 브레인이 윤종민 사장(현 롯데인재개발원장)을 비롯한 롯데지주 경영전략실 멤버였다면 새로운 롯데의 브레인은 70년대생, 해외파, 비(非) 화학 출신으로 대표되는 경영혁신실 두 승욱(김승욱, 서승욱)이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

롯데그룹의 2인자였던 황각규 전 부회장이 작년 8월 롯데지주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뒤 맡고 있던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황 전 부회장의 완전한 용퇴를 전후로 이른바 '황각규 라인'이라고 불렸던 인물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황 전 부회장의 후임인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는 '70년생, 해외파, 비(非) 화학 출신'으로 대표되는 인재들을 지주에 앉혀 그룹의 미래 먹거리와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왼쪽부터 작년 8월 전격 퇴진한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사장). / 롯데지주 제공

10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황 전 부회장은 작년 8월 인사에서 경영 일선에서 용퇴한 뒤에도 사내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었으나 지난 3월 25일부로 퇴임했다. 황 전 부회장은 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사원으로 입사해 부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이자 정통 롯데맨이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실세로 하이마트·KT렌탈·삼성정밀화학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주도해 회사를 재계 5위 대기업으로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황 전 회장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이유로 돌연 퇴진한 뒤, 롯데그룹 내에서 '마산고, 서울대 화학과, 호남석유화학, 정책본부'로 대표되는 황각규 라인이 대거 정리됐다. 황 전 회장의 마산고 후배이자 정책본부에서 손발을 맞춘 남익우 전 롯데GRS 대표이사, 호남석유화학 출신 오성엽 전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실장이 회사를 떠났다. 서울대 화학과 동문인 임병연 전 롯데케미칼 기초소재부문 대표이사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 대표로, 황 전 회장의 브레인으로 불렸던 윤종민 전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 8월 인사 전까지 황 전 부회장 체제의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에서 계열사 관리, 신사업 발굴 등 미래 전략을 담당하던 임원들도 회사를 떠나거나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경영혁신실로 축소 개편되기 전 경영전략실은 윤종민 실장(사장) 휘하에 1~4팀, 전략기획팀 총 5개팀으로 구성됐다. 1~4팀은 각각 식품 사업부문(BU·Business Unit), 유통BU, 화학BU, 호텔&서비스BU를 맡아 각 분야의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 하는 전략을 짜는 역할을 맡았다.

올해 2월 사임한 조영제 롯데쇼핑(023530) 이커머스사업부 대표가 경영전략실 경영전략2팀장 출신이다. 굵직한 그룹 인수합병(M&A)을 총괄하며 투자은행(IB)업계와 소통하던 경영전략4팀 김태완 전무는 작년 말 인사에서 롯데렌탈 자문으로 발령 받아 현업을 떠났다. 이재홍 전략기획팀장은 롯데월드 개발부문장, 백광현 경영전략1팀장은 롯데제과 SCM부문장, 박인구 경영전략3팀장은 롯데케미칼 이노베이션센터장으로 이동했다. 황 전 부회장 밑에서 그룹 미래 전략을 짜던 컨트롤타워가 해체되고 멤버들이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이들은 황 전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3월 계열사 기타비상무이사, 감사에서도 내려왔다. 백광현 부문장은 대홍기획, 롯데네슬레코리아, 김태완 고문은 롯데자산개발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았고 박인구 센터장은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감사로 재직했으나 3월부로 그만뒀다. 롯데그룹은 지주 핵심 멤버를 계열사 이사, 감사에 앉혀 지주와 계열사 간 소통, 협력 강화를 위한 중간역할을 맡겼는데 이 역할에서도 물러나게 된 것이다.

롯데그룹에선 황 전 부회장 후임인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가 미래 전략을 짜고 있다. 황 전 부회장보다 5살 어린 이 사장은 1960년생으로 1986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뒤 상품기획, 영업, 재무, 기획 등을 두루 거쳤다. 2015년부터 롯데하이마트 대표를 맡아 체험형 가전매장 메가스토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작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전·가구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유통 계열사 중 홈쇼핑과 함께 매출을 증가시키는 성과를 냈다.

왼쪽부터 이훈기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 정경운 롯데쇼핑 헤드쿼터(HQ) 기획전략본부장(상무). / 롯데지주 제공

이 대표의 브레인으로는 지주 경영혁신실장 이훈기 부사장과 두 팀장이 꼽힌다. 1967년생인 이 부사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 호남석유화학을 입사해 황 전 부회장과 비슷한 발자취를 걸었으나 롯데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제시한 모빌리티 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는 2015년 롯데렌탈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재직하며 그룹 내에서 성공적인 외부 협업으로 평가 받는 GS칼텍스의 자회사 그린카 350억원 지분 투자를 이끌어냈다. 신 회장과 호남석유화학,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측근 중 한명으로 꼽힌다.

경영혁신실 아래 경영혁신1팀, 경영혁신2팀 팀장을 맡고 있는 '두 승욱'은 롯데그룹 임원 중에선 보기드문 이력을 지녔다. 경영혁신1팀장인 김승욱 상무는 1974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딴 해외파로 사모펀드인 론스타코리아 근무 경력이 있다. 2014년 이동우 대표가 롯데월드를 이끌 때 중국 심양법인장을 지냈다. 경영혁신2팀장 서승욱 상무보는 1977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전력 석사를 땄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사 PwC에서 근무하다 롯데지주로 오기 전까지 롯데케미칼 이노베이션센터장을 맡아 화학·소재·바이오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했다.

황 전 부회장 아래 경영전략실이 그룹 내 모든 M&A에 관여했다면 이 대표가 이끄는 경영혁신실은 바이오, 모빌리티, 소재 등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딜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롯데쇼핑이 인수전에 참여한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롯데지주(004990)가 아닌 롯데쇼핑 헤드쿼터(HQ) 조직이 전담하고 있다.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과 작년 10월 외부에서 영입된 정경운 HQ 기획전략본부장(상무)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72년생인 정 전무는 외부 출신으로 롯데쇼핑 총괄 임원에 오른 첫 인사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동아ST를 거쳤다.

김승욱 상무, 서승욱 상무보, 정경운 상무의 공통점은 기존 롯데의 주류 임원들과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1970년대생으로 기존 롯데 임원에 비해 젊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으며 롯데 순혈 인사로 꼽혔던 화학 계열사 출신이 아니다. 이들이 전략통으로 급부상하는 건 그만큼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롯데의 위기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129조155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줄었다. 5대 기업(삼성·현대차·SK·LG) 중 자산총액이 감소한 건 롯데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