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10시 이마트 신도림점. 평일 오전임에도 매장을 찾은 고객들과 진열대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제품을 진열하는 직원들 가운데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른바 장보기 전문사원으로 불리는 PP센터(피킹 앤 패킹·Picking and Packing) 직원들이다. 이들은 SSG닷컴에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을 선별해 포장, 배송하는 일을 한다. 온라인 주문이 늘면서 이마트는 전국 매장 140여곳 중 110여곳에 PP센터를 뒀다.
이마트는 작년 12월 리뉴얼을 통해 신도림점 PP센터 면적을 기존 20평에서 320평으로 대폭 확대했다. 유휴공간을 활용했다. 이곳을 서울 서부 지역 온라인 배송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대형 물류센터가 하는 역할을 마트 점포가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마트들이 한때 막대한 비용 지출 요인으로 보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점포를 리뉴얼 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의 약진이 이런 사업 구조 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대형마트 3사 중에서 점포 리뉴얼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이마트(139480)다. 이마트는 지난 2019년 2분기 사상 첫 분기 적자를 낸 후 기존 점포 30% 이상을 리뉴얼 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에 비해 대형마트가 경쟁력을 갖는 식품 코너를 확대하고 비(非)식품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문몰 중심으로 배치, 온라인 배송 강화를 위한 PP센터를 확대하는 게 골자다.
작년 월계점을 시작으로 △신도림점 △춘천점 △순천점 △강릉점 △광주점 △천안점 △칠성점 △양산점 9개 매장을 리뉴얼했다. 리뉴얼 이후 올해 4월 기준으로 모든 점포 매출이 전년 대비 두자릿수 증가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작년 6월 직접 방문했던 월계점의 경우 1~4월 2시간 이상 주차한 고객 비중이 7.8%로 지난해 3.6%에서 확대됐다.
지난해에만 총 12개의 점포를 정리한 롯데마트도 폐점 대신 점포를 리뉴얼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롯데쇼핑(023530)은 작년 2월 오프라인 점포 700개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200여개를 닫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1월 기준 마트 매장 수는 113개로 이중 10여개를 올해 추가로 폐점 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롯데마트의 한 관계자는 "사업 방향을 폐점보다는 리뉴얼을 통한 실적 개선, 경쟁력 강화로 수정한 게 맞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리뉴얼해 문 연 롯데몰 여수점 같은 사례가 또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수점은 마트로 운영됐으나 이번 리뉴얼로 패션·의류와 가구·가전, 인테리어 품목군을 강화한 종합몰로 재오픈했다. 여수·순천·광양 지역 최초의 명품 편집샵 탑스와 헬스앤뷰티 전문매장인 롭스에 건강기능식품 구성을 확대한 롭스 플러스를 100평 규모로 입점시켰다.
작년 안산점, 대구점, 대전둔산점, 대전탄방점을 매각해 1조원을 확보한 홈플러스도 올해 기존 점포를 창고형 할인점 홈플러스 스페셜로 전환하는 리뉴얼에 한창이다. 7월 말까지 강원도 원주점, 인천 청라점을 바꾼 뒤 연말까지 매월 1~3개의 점포를 순차적으로 전환해 열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나 롯데마트의 롭스, 탑스처럼 특정 제품군을 판매하는 전문몰이 없어 체험형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고객들이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유인이 이마트, 롯데마트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대신 고객군을 1인가구부터 자영업자까지 넓게 확대할 수 있는 창고형 할인점으로 기존 매장을 전환해 수익성 개선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대형마트3사가 오프라인 점포 폐점에 신중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전환 가속화와 쿠팡의 약진이다. 소비자들이 빠르고 저렴한 온라인 주문, 배송에 익숙해지면서 유통업계의 라스트 마일(last mile·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마지막 단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점포를 많이 확보한 기업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점포가 짐이 아닌 무기가 된 것이다.
국내 유통사에 투자한 한 사모펀드(PEF) 임원은 "미국 아마존이 온라인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뒤 오프라인 매장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프라인 점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지만 코로나19 이전에는 이런 얘기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닥치고 쿠팡이 급성장하면서 그제서야 점포의 중요성을 체감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