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업계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닝쇼크'를 맞은 지 1년 만인 올 1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돼서죠. 해외 여행길이 막힌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가 백화점에 집중된 데다, 백신 접종으로 소비심리가 호전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됩니다.
◇빅3 백화점, 1분기 실적 일제히 상승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6760억원, 영업이익은 10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5%, 261.3% 증가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매출이 4974억원으로 26.7% 올랐고, 영업이익(760억원)은 122.3%가 뛰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도 매출(4932억원)이 23.8%, 영업이익은 3배 늘어난 82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신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백화점 '빅3' 대표들도 걱정을 한시름 놓게 됐습니다. 황범석 롯데백화점 대표, 차정호 신세계백화점 대표, 김형종 현대백화점 대표 모두 2019년 말 백화점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여야 했기 때문이죠.
코로나19 발생 초반, 잇따른 확진자 발생으로 수시로 점포 문을 닫아야 했던 백화점들은 재택근무 시대에 맞춰 명품·리빙 등의 콘텐츠를 강화하고 실시간 판매 방송(라이브커머스) 등을 발빠르게 도입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 덕에 백화점 명품관 주변은 '코시국(코로나 시국)'에도 일 년 내내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명품을 사기 위해 매장에 달려가는 것)족의 행렬이 이어졌고요.
현대백화점(069960)의 경우 서울 여의도에 축구장 13개 크기의 초대형 백화점 더현대서울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상업시설보다 휴식 문화 공간을 더 많이 배치해 코로나 시대에 맞는 오프라인 유통 공간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었죠.
◇대구백화점은 52년 만에 영업 중단...양극화 심화
희소식만 있는 건 아닙니다. 대구의 쇼핑 중심지 동성로의 터줏대감이던 대구백화점(006370) 본점은 오는 7월 1일부로 기약 없는 휴점에 들어갑니다. 회사 측은 "영업 환경 악화가 지속되면서 개선안 모색을 위해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폐점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1944년 대구 중구 교동시장 인근에서 '대구상회'라는 이름으로 창업해 1969년 동성로에 문을 연 대구백화점은 2000년대 초만해도 동성로점과 프라자점 두 점포를 합쳐 연매출 7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지역의 랜드마크로 통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이 1973년 대구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철수한 이유도 대구백화점의 벽을 넘지 못해서였죠. 향토 백화점으로는 유일하게 증권시장에도 상장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 '빅3' 백화점이 대구에 진출하자 입지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나마 대구백화점은 오래 버틴 겁니다. 지역 백화점은 외환위기(IMF)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1997년 부산에서만 유나·태화·미화당·세원·신세화백화점 등 5개 백화점이 폐점했고, 광주 화니백화점도 1997년 부도가 났습니다. 가든 송원(광주), 동아백화점(대구) 등도 폐점하거나 다른 유통사로 경영권을 넘겼습니다.
이들 백화점은 서울에 근거를 둔 대기업 유통사들이 지방에 대규모 점포를 내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백화점이 명품을 소비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면서 기존에 내세웠던 '생활밀착형' 콘셉트가 유명무실해졌죠. 지역 백화점에 대한 향수가 있는 중년 고객들은 '의리'로 해당 점포를 찾았지만, 글로벌 트렌드에 빠삭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에겐 변변한 명품 하나 없는 향토 백화점은 생필품을 파는 대형마트나 다름없었습니다.
◇대구백화점의 몰락이 '빅3' 백화점에 시사하는 것
향토 백화점의 몰락은 '빅3' 백화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난해 국내 백화점 점포 30곳의 매출을 살펴보면, 1위인 신세계 강남점(2조394억원)과 30위인 현대 미아점(3283억원)의 매출은 무려 6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1위와 10위(신세계 대구점)의 매출 격차도 2.5배나 됩니다.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 점포를 제외한 지역 백화점들은 대부분 매출이 부진했습니다. 명품 3대장,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입점한 곳은 고성장했지만, 명품을 유치하지 못한 백화점은 부진한 양극화 현상이 또렷해진 탓이죠. 1분기 기록적인 매출 신장에도 '빅3' 백화점이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백화점을 비롯한 전통 유통업체는 코로나19 전부터 온라인 쇼핑의 부상으로 쇠퇴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소매업의 종말'이라는 말도 나왔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쇠퇴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미국에선 2019년 9800여개의 소매점이 문을 닫았고, 지난해엔 2만5000여개의 점포가 폐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엔 시어스, 니만마커스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유통업체도 포함됐습니다.
코로나 기저효과와 보복 소비 등으로 실적이 크게 회복됐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해외여행이 정상화되면 백화점으로 쏠렸던 명품 소비가 면세점과 해외로 이탈할 것이고, 그땐 코로나 때보다 더 큰 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백화점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휴식과 미식, 문화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줄 수 없는 '경험'을 앞세워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죠.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여의도 더현대서울 등 최근 주목 받는 백화점들은 모두 휴식과 체험 공간을 늘리는 복합화 전략으로 활로를 찾았다"며 "향후 백화점은 복합쇼핑몰로 진화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