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업계의 예술 후원 사업이 활발해 지면서 백화점과 호텔이 예술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쇼핑몰과 호텔 같은 나들이 장소에서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예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메세나(Mecenat)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뜻한다. 광범위하게는 최근 경영계의 화두인 ESG경영(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의 갈래로도 해석된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산 중 고미술품과 국내외 유명 작가의 회화 등 작품 2만3000점에 달하는 기증품 목록이 공개되면서 이 같은 메세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국내 유통기업들은 최근 들어 콘서트나 연극 같은 공연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인 전시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미술 기획전을 열거나 국내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호텔·카지노 사업을 운영하는 파라다이스(034230)그룹은 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에 미술 전시관을 조성했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는 그룹이 소장한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등 해외 작가와 박서보, 이강소, 김종학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상시 전시한다. 특별전을 통해서는 국내 신진 예술가들도 발굴한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는 접근성에 제약이 있는 편임에도 기획전이 열릴 때마다 관람객이 2만~5만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주제로 한 글로벌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국내 작가인 강이연의 특별전 '프록시믹스: 드로잉 소셜 버블'을 시작했다. 강 작가는 건물 벽면이나 스크린 등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기법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이번 전시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 형태로 제작해, 관람객의 움직임을 인식해 바닥에 비치는 이미지가 달라지는 점이 특징이다.
강 작가는 "최근 들어 민간 기업이나 공공 분야를 가리지 않고 메세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작가들에 대한 협업 제안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8년 출범한 롯데문화재단을 주축으로 메세나 활동을 진행 중이다. 공식 미술관인 롯데뮤지엄을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1320㎡ 규모로 조성했다. 국내외 현대미술을 소개하는데 방점을 둔 롯데뮤지엄은 전시별 관람객이 평균 2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지도를 높였다.
롯데문화재단 관계자는 "롯데뮤지엄은 예술을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 접근성이 좋은 롯데월드타워에 개관했다"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하겠다는 목표 아래 예술 전시와 관객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069960)그룹은 압구정본점을 개점한 1985년 국내 최초로 백화점 안에 미술품 전시 공간인 '갤러리H'를 선보였다. 무역센터점·대구점 등에도 갤러리 공간을 마련해 국내외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의 전시회를 연간 100회 이상 개최한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는 연면적 2736㎡ 규모로 동화책 5000권 이상을 보유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을 조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무역센터점에서 페르난도 보테로, 쿠사마 야요이, 키스 해링 등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를 개최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과 아웃렛을 찾는 고객 누구나 문화예술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메세나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잠재력 있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도 호텔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데 적극적이다. 비스타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는 해마다 2~4번에 걸쳐 젊은 예술가나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인 '비스타 아트'가 개최된다.
워커힐호텔리조트 관계자는 "최근에는 호텔업계에서도 투숙이라는 기본적인 기능 뿐만 아니라 식사나 문화 생활 등을 통해 감성적, 정서적 체험을 제공하려는 추세"라면서 "전시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던 투숙객이라도 호텔에서 작품을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