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의 화학·패션 부문 자회사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는 지난달 코오롱베니트와의 1분기 용역 거래 금액이 당초 예상했던 83억8200만원에서 21.4% 줄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특별한 요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전 (거래금액) 예측이 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오는 12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앞두고 내부거래를 사전적으로 줄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코오롱그룹의 경우 그동안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밖에 있었던 시스템통합(SI) 기업 코오롱베니트가 새롭게 감시 대상에 추가된다. 이 회사는 코오롱이 지분 100%를 보유했지만 이웅열 전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은 없다는 이유로 규제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 회사는 작년 계열사의 시스템 유지·보수를 명목으로 678억원의 매출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전체 매출의 16%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1월~5월3일) 내부거래 금액이 사전 예측보다 20% 이상 변경됐다고 공시한 건수는 3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0건) 대비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공정위가 작년 10월부터 시행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대기업들이 그동안 공시 의무를 면제받았던 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와의 50억원 이상 혹은 자본총계 혹은 자본금의 5% 이상 내부거래도 미리 공시하고 실제 금액이 20% 이상 변동하면 추가 공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은 변경 공시 대부분이 감소 공시라는 점이다. 다른 기업과의 거래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부거래이기 때문에 100% 예측은 어렵더라도 20%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공시를 하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정책팀장은 "오는 12월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 효과로 볼 수 있다"며 "규제 적용이 예상되는 기업의 경우 미리 지분율을 낮추거나 거래금액을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 20% 이상 가진 비상장사에서 대폭 확대했다. 앞으로는 상장 여부에 관계없이 총수일가가 지분 20%를 보유한 기업과 그 기업이 지분을 50% 이상 가진 자회사로 확대된다. 즉 총수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기업 뿐만 아니라 간접 지배하는 계열사도 일감몰아주기 대상이 되는 셈이다. 작년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규제 대상 기업은 209개에서 388개가 늘어나 약 6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계열사와 연간 거래금액 200억원 이상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 비중 12% 이상 △정상가격과 거래조건의 차이 7% 이상 등 이 가운데 하나라도 포함되면 규제 대상에 해당된다. 규제 대상이 된다고 해서 바로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가 계열사 간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등 특정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조사에 나선다. 기업으로선 경제검찰 공정위의 감시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다.
GS리테일(007070)은 100% 보유한 도시락·김밥·빵·면류 제조 자회사 후레쉬서브와의 1분기 거래금액이 당초 예상했던 152억원에서 102억2700만원으로 줄었고 축산물 상품을 공급하는 자회사 후레쉬미트와 계약금액도 5억7400만원에서 3억2900만원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설립한 후레쉬미트는 GS리테일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후레쉬서브, 후레쉬미트 모두 새롭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편입되는 기업들이다.
아모레퍼시픽(090430)은 작년 4분기 내부거래 금액이 예상보다 20% 이상 적었다고 올해 공시했다. 공시한 기업은 서경배 회장 일가 지분율이 57%(보통주, 작년 말 기준)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50% 이상을 보유해 새롭게 규제 대상에 추가되는 비상장 회사들이다. △이니스프리 △에스쁘아 △코스비전(화장품 주문자 상표 제품 제조) △오설록(식료품 판매)이다. 이들 모두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예컨대 코스비전은 매출 100%가 관계사에서 나온다.
GS리테일과 아모레퍼시픽 측은 "특별한 요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번에 처음 예상 거래금액을 추정해 공시하는 과정에서 추정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시행 전까지 기업들이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내부거래 비중 자체를 낮추는 현상은 가속화 할 전망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월 용기 제조 자회사 퍼시픽글라스 지분 60%를 프랑스 기업에 매각했다.
GS건설(006360)은 지난달 8일 자회사 자이에스앤디의 신주인수권증서 293만5715주를 매각한 데 이어 27일 유상증자 청약에서 배정받은 신주 절반에 대해서만 매수 주문을 넣었다. 다음달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자이에스앤디 지분율이 61.17%에서 50% 이하로 내려간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개정안으로 56개 상장사가 지분 10조8000억원어치를 팔아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