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빠른 속도로 아이 수가 줄어드니 예전과 다르게 전략을 가져갈 수 밖에 없지요.”
2분기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저출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유통업계의 생존 전략도 바뀌고 있다. 판매 제품에 ‘프리미엄’ 딱지를 붙여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를 늘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제과업체나 유업체는 성인 입맛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살 길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 아동복·젖병에 따라붙는 ‘프리미엄 명품’ 딱지
펜디키즈, 베이비디올, 버버리 칠드런, 몽클레르앙팡, 엠포리오 아르마니 주니어, 겐조 키즈…
15일 방문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0층 리틀신세계 코너에는 아동 명품 브랜드 매장이 줄이어 입점해있었다. 가격은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 수준으로 성인 명품 의류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베이비디올에서 내놓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블랙 발레리나 구두는 100만원, 로고가 박힌 흰 티셔츠는 43만원이었다. 겨울에 입힐 수 있는 패딩조끼는 340만원으로 웬만한 사람의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
펜디 키즈의 기본 니트 가격은 110만원. 티셔츠와 가디건 가격은 각각 45만원, 125만원이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가격이었다.
이날 매장을 방문한 염모(62)씨는 “추석날 손주에게 선물할 옷을 고르는 중”이라면서 “아들 내외가 손주에게 사주긴 어려울 것 같아 선물하려고 방문했다”고 했다. 가격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탄탄대로를 걸으라는 바람을 담는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롯데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에 속속 아동 명품 매장이 입점하고 있다. 작년 3월 신세계백화점에 국내 최초로 ‘디올’의 아동복 라인 ‘베이비 디올’이 입점한 이후 지난 2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도 들어섰다. 지난 6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는 ‘펜디 키즈’가 신규 입점하기도 했다.
매출도 늘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아동 명품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4.5% 늘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의 수입 아동복 매출은 7.7% 늘었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출생 아이 수가 줄어든 반면 태어난 아이에게 투자하는 가족은 늘어나면서 명품이나 프리미엄 상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 한 명을 위해 주변인 10명이 지갑을 연다는 ‘텐 포켓(10 pocket)’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소재 유치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박모(26)씨는 “요즘 우리 반에도 버버리·디올 등 명품 옷을 입고 골든구스 등 명품 신발을 신고 오는 아이들이 매일 2~3명씩은 있는 것 같다”며 “명품 옷이 아예 없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분유·우유에도 ‘프리미엄’이 붙은 제품 위주로 매출이 늘고 있다. 최근 a2 단백질이 들어있는 우유를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우유에는 a1 단백질이 주로 함유돼 있는데, a2 단백질이 포함돼야 더 좋은 우유라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서울우유는 1리터(ℓ)에 3050원인 반면 a2 단백질이 포함된 우유는 lℓ에 7000원꼴로 가격 차이가 2배 이상 난다.
a2단백질이 포함된 우유만 구매한다는 이진아(36)씨는 “이 우유가 한국에 유통되지 않을 때부터 뉴질랜드에 사는 친척을 통해 이 우유를 배송받아 애들에게 먹였다”면서 “한 명밖에 없는 아이가 먹는 우유인데 비싸더라도 좋은 걸 먹이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바람은 유아 젖병에도 불었다. 프리미엄 싱가폴 젖병 브랜드로 알려진 ‘헤겐’의 240㎖짜리 젖병·젖꼭지 세트는 개당 3만5800원. 일본 젖병 브랜드인 ‘더블하트’의 240㎖ 젖병·젖꼭지 세트 가격(2만1400원)보다 비싸지만 매출은 늘었다. 헤겐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 늘었다.
10개월 된 아이를 둔 강모(30)씨는 “싼 제품은 1만원 이하인 것도 있지만 아이 입에 넣는 제품이다 보니 좀 비싸더라도 좀 더 좋다는 제품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유업계·제과업계의 생존전략 “어린이 소비자만 봐선 안 된다”
유업계와 제과업계는 최근 어른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변신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품절 사태를 빚은 농심의 ‘먹태깡’이 대표적이다. 먹태깡은 출시 두 달 만에 400만봉 이상 판매되며 흥행했다. 이 과자의 주된 고객층은 어린이나 영유아가 아닌 어른들이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통상 아이 입맛을 사로잡는 과자가 성공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제품은 살짝 매운 맛이 섞여있다”면서 “맥주 안주용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했다. 먹태깡이 인기를 끌자 유사 제품도 줄이어 나오고 있다. 롯데웰푸드의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이나 유앤아이트레이드(유앤)의 ‘먹태이토’ 등이 대표적이다.
농심 관계자는 “과자는 아이들만 먹는 간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농심에서는 성인들도 주 고객층이라고 염두해두면서 개발한다”고 전했다.
유업계는 단백질 음료나 파우더 등 단백질 식품을 만들어 성인 소비자를 유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백질 음료 매출은 늘고 성인의 흰 우유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라서다. 매일유업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단백질 식품 시장은 약 4000억 규모로 2018년 대비 400배 늘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출산율과 직결된 제품이 아닌 성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한 건강기능식품, 성인 영양식 등이 향후 사업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보고 이 시장에 집중적으로 역량을 배치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