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제작 상품’부터 ‘한정판 운동화’, ‘암호화폐’, ‘그림 투자’, ‘미라클 모닝(아침에 하는 자기계발)’까지… MZ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움직임에 기업과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트렌드 종결자인 MZ세대가 연일 새로운 일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고객과 직원으로서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세대이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알쏭달쏭한 존재다. 그렇지만 마냥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이들은 나의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남의 가치를 존중하고, 즐기며 소비하고 투자하고 일한다. MZ세대가 만드는 세상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코노미조선’이 커버스토리 ‘MZ이코노미’를 통해 MZ세대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기회를 마련해봤다. [편집자주]

5월 16일 일요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쇼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매장은 번개장터가 선보인 BGZT Lab(브그즈트랩). 국내에 재고가 없거나 한정 판매돼 구하기 어려운 스니커즈 모델을 구매할 수 있어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영업시간이 3시간 이상 남았는데도 방문 예약이 꽉 차 대기조차 걸 수 없었다. 가드라인 밖에서 열댓 명이 까치발을 들고 스니커즈를 구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다음 날 오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우드스터프디자인’ 스튜디오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맞춤 제작)으로 성업 중이다. 무선 이어폰을 꾸미는 데 드는 가격(20만~30만원)이 이어폰 가격에 버금가지만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커스터머 두 명이 한 달에 작업하는 에어팟(애플의 무선 이어폰)만 100건이 넘고, 한 달 매출만 3000만원에 이를 정도다. 소셜미디어(SNS)로 입소문이 나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도 주문이 이어진다. 커스터머 이명일씨는 “처음에는 이니셜 정도만 요구하는 고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러데이션, 무광·유광, 반짝이, 사진, 사인 등 요구 사항이 굉장히 다양해졌다”라면서 “가격을 말해주면 예상보다 저렴하다고 좋아하는 고객들도 종종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5월 17일 BGZT Lab에 한정판 운동화를 사려는 쇼핑객들이 몰렸다. 고객 취향에 맞춰 색다른 디자인을 입힌 무선 이어폰과 컴퓨터 마우스. 사진 안소영 기자·우드스터프디자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소비 취향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MZ 세대의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 중시를 확인시켜준다. MZ 세대는 식품, 생필품에서는 가성비를 따지는 대신, 명품이나 한정판 제품에는 오히려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오죽하면 ‘플렉스(flex)하는 자린고비’라는 말까지 등장했을까. 명품시장을 흔드는 과시형 소비와 구매한 뒤 되파는 투자형 소비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나만을 위한 ‘맞춤형 소비’에 열광

MZ 세대는 옷을 본인 정체성의 표현으로 본다. 명품 열풍을 주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글로벌 명품 업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명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은 1980~95년 출생자로 이들의 글로벌 명품 시장 기여도는 35%에 달했다. 보고서는 MZ 세대의 기여도가 2025년에 이르러 전체의 60%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세계 백화점과 롯데 백화점에 따르면 2020년 명품 매출에서 2030세대의 비중은 각각 50.7%, 46%에 달했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담아 직접 맞춤 제작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도 인기다. 스니커즈 브랜드 컨버스는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컨버스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한 켤레에 7만~10만원대 초반인 컨버스 스니커즈에 2만~3만원의 비용을 들여 커스터마이징을 하는데 MZ 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해외에서는 개인 맞춤형 샴푸와 린스를 정기구독하는 서비스가 인기다.

MZ 세대는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를 하기도 한다. 환경, 공정, 인권, 동물권, 윤리 등 가치관에 맞는 기업의 상품은 가격대가 높더라도 선뜻 구매하고, 부도덕한 기업의 상품은 불매운동을 하는 식이다. 무라벨 생수, 종이·해조류 빨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가방, 에코퍼 등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똑똑해진 MZ 세대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 신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며 “기업들이 더욱 부지런해지고 정직해져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LP 리셀 열풍 뒤에 ‘투자형 소비’

MZ 세대는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입해 웃돈을 받고 되파는 ‘리셀’에도 적극적이다. 이른바 ‘투자형 소비’다. 리셀 상품은 명품, 의류, 피겨, 레고 등 장난감, 스니커즈 등이 대표적이다. 스트리밍 시대 LP 열풍 뒤에 MZ 세대가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3년간 LP 구매 고객 가운데 20대(21%)와 30대(32%)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정적인 자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고 제품을 사고파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2030세대 10명 중 8명 이상이 ‘중고 거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박주영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은 “MZ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것을 접하면서 안목이 높아지고 취향이 확고해진 세대”라며 “좋아하는 것도 많고 정보도 많기 때문에 여러 상품을 사고팔고 투자하면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터넷 덕분에 공급자, 수요자가 쉽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기성 세대와 소비 형태가 다르다”고 분석했다.

MZ 세대의 확고한 취향 유지는 ‘디지털의 발전’에 따른 ‘개인화’도 한몫한다. SNS의 일상화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와 취향이 같은 친구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기업들도 MZ 세대 소비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러닝 커뮤니티, 룰루레몬은 요가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 간 유대감을 형성하게 한다. 모바일 SNS 기반의 중국 이커머스 업체 핀둬둬가 알리바바 이용자 수를 일시 추월한 배경에도 MZ 세대에 맞는 커뮤니티, 맞춤형 공급, 재미라는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취향을 바탕으로 생겨난 커뮤니티는 책임감도 크지 않고, 상명하복 없이 모두 동등한 인격체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커뮤니티 피트니스 ‘F45’ 체험기

운동부터 인맥까지, 일석이조 커뮤니티

정현진 인턴기자

하루 운동의 끝을 알리는 단체 사진 촬영. 사진 F45

“처음 오셨어요?”

5월 14일 금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종로구의 F45 광화문점에 들어선 기자에게 코치가 물었다. “오늘은 처음이시니까 너무 힘들면 알아서 쉬셔도 돼요.” 도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이럴까. 3년 차 헬스인으로서 ‘운부심(웬만큼 운동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던 기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운동이 시작됐다. 바닥에 있던 공, 막대, 박스 등 운동 소도구를 차례로 활용해야 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 탓인지 산소 부족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 하기 싫다.’ 팔 굽혀 펴기를 한 후 느릿느릿 일어나고 있는데 옆에서 회원 임혜진씨가 소리쳤다. “화이팅! 15초 남았어요!” 각자 운동에 열중하는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외쳤다. “할 수 있다!” “끝까지 가자!” 슬쩍 벽에 붙어 쉬려고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또다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위해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고강도 운동에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엉덩이가 아팠다. 은근슬쩍 서있으려 하면 여기저기서 독려해주는 탓에,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삑!’ 드디어 9번째 동작이 끝났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누군가 기자를 불렀다. “우리 마무리해야 해요!” 벽 한쪽에 크게 그려진 F45 로고 앞에서 단체 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바닥에 드러누워 쉴 수 있었다.

스튜디오 한쪽 가벽에는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R45 같이해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R45는 회원 몇몇이 함께 만든 러닝크루 이름이란다.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식단 관리, 러닝, 등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제이미 김 F45 광화문·공덕점 대표는 “F45는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한다. 교류를 통해 브랜드 로열티가 생기고, 또 다른 커뮤니티들이 생성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