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캘리포니아’로 유명한 미국의 록밴드 이글스의 공연 장면. /로이터연합
임희윤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콘서트나 페스티벌에 가면 공식 티셔츠를 곧잘 산다. 멋진 밴드 로고나 앨범 표지 이미지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 더욱이 공연 당시의 특별한 기억을 실물로 박제해 소장한 듯해 뿌듯하기도 하다.

집에 쟁여둔 수십 벌의 티셔츠 가운데 나를 가장 웃음 짓게 하는 게 있다. 그 웃음은 흐뭇한 미소라기보다 기발한 농담을 마주한 폭소에 가깝다. 2018년 9월, 미국 뉴욕의 존스 비치 시어터에서 산 티셔츠. 정면에 커다랗게 박힌 문구는 ‘NO MORE TOURS II’다. 직역하면 ‘더 이상 투어 안 한다’ 투어의 2탄. 전설적 록 밴드 블랙 사바스의 전 보컬 오지 오즈번의 당시 투어 제목이다. 1992년에 은퇴를 선언하며 한 차례 ‘NO MORE TOURS’ 라는 투어를 한 바 있어서 ‘이번엔 진짜 은퇴’ 라며 단 제목이 ‘NO MORE TOURS II’였다. 그 ‘노 모어 투어’를 돌면서도 오지는 “투어를 관둔다는 거지, 공연을 관둔다는 건 아니” 라고 포석을 깔았다. 슈퍼스타에게 은퇴란, 이렇게 힘든 것이다.

오지처럼 은퇴를 번복한 가수들이 있다. 이건 가수 하나면 혼자 마음 바꾸면 되니 비교적 간단하다. 더 어려운 것은 여러 멤버로 구성된 밴드의 재결합이다. 헤어질 땐 헤어지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을 터. 해묵은 감정이나 돈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재결합은 요원하다. 그래도 슈퍼 밴드에 재결합은 슈퍼 이벤트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팬은 ‘제발 다시 뭉쳐달라’며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대기 모드’다. 계산기 잘 두드리는 공연 기획자들은 그걸 잘 안다. 멤버를 종종 찾아가 이런 식으로 ‘설(說)’을 푼다.

“자, 눈 딱 감고 한 번 뭉치면 북미 15개 도시, 해외 30개 도시를 돌 수 있어요. 입장권 수익, 새로 만든 티셔츠와 각종 디자인 상품 수익, 방영권과 영상물 수익까지 합치면…, 대충 계산해 봐도 이게 얼마예요. 이제 목돈 쥐고 자식 손자 용돈 두둑이 주면서 편하게 살아야죠. 지난번에 부동산 투자도 실패했다면서요. 미안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봐요.”

14년 만에 돌아온 이글스 “해체한 적 없다”

세계적인 밴드일수록 재결합은 거대한 경제다. 이글스란 밴드가 있다. 미국 그룹이고 ‘Hotel California’란 곡으로 유명하다. 1971년 결성해 4집부터 7집까지를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렸다. 화려한 나날도 멤버 간 반목을 막진 못했다. 특히 기타리스트 돈 펠더와 글렌 프라이 사이의 갈등이 대단했다. 수천, 수만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와중에도 웃는 낯으로 서로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속삭일 정도였다.

“내가 네 엉덩이를 차버리기까지 단 세 곡남았어. 짜샤!”

결국 1980년 이글스는 해체했다. 그 이후로 누군가 “재결합 안 해요?”라 물으면 멤버들은 이렇게 답했다. “재결합? 할 거예요. 만약에 지옥이 얼어붙으면(when hell freezes over)!”

그리고 1994년, 이글스는 재결합했다. 재결합 앨범 제목은 ‘지옥, 얼어붙다(Hell Freezes Over)’였다. ‘When hell freezes over’는 ‘결코 ~할 일 없다’는 뜻의 영어 숙어다. 1994년 4월, 재결합 첫 공연 무대에서 멤버 글렌 프라이는 “우린 해체한 적 없다. 14년간 쉬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글스의 지옥이 얼어붙은 이유는 뭘까. 자세한 내막은 멤버들만 알 것이다. 어쨌든 이글스는 재결합 투어와 앨범으로 1970년대 전성기를 뛰어넘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컴백 앨범인 ‘Hell Freezes Over’는 같은 달인 1994년 11월 발매된 너바나의 ‘MTV Un-plugged in New York’의 판매량마저 넘어섰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었다. 너바나, 펄 잼 같은 거칠고 염세적인 밴드가 이끈 1990년대 그런지(grunge) 열풍은 MTV의 신규 프로그램 ‘MTV Unplugged’의 인기로 이어졌다. 강렬한 록 기타로 선보인 원곡을 부드러운 통기타로 재해석하는 콘셉트. 20년 선배인 이글스가 절묘하게 그 흐름을 타고 MTV 라이브로 꾸민 실황 앨범이 바로 컴백 앨범인 ‘Hell Freezes Over’였던 것이다. 너바나를 좋아하는 신세대(X 세대)는 형제자매나 부모의 카 오디오로 듣던, 그들에겐 동시대가 아닌 전설인 이글스의 컴백을 반겼고 익숙한 ‘언플러그드’ 포맷의 앨범을 환영했다.

이글스는 1994년 재결성 이후 오랫동안 북미 투어, 월드 투어를 돌았다. 나이와 세대를 막론한 미국 밴드 사상 최고의 출연료를 받으면서. 2011년엔 첫 내한 공연도 열었다. ‘첫 내한 공연’이란 얘기는 재결성 후 월드 투어에서 이글스가 정작 전성기 때도 안 가본 나라까지 구석구석 돌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도 된다.

재결합 경제란 이런 것이다. 이미 젊은 시절 형성된 지식재산권(IP)의 가치를 다툼과 해체에 관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수년에서 수십 년간의 휴지기와 기대감으로 증폭시킨 뒤 최적의 시점에서 최고로 폭발시키는 것, 이것이 경제적 재결합의 정석이다.

최근 브릿팝(팝코노믹스 3회-브릿팝노믹스 참고)의 기수, 밴드 오아시스의 내년 재결합 투어가 화제다. 15년 만의 컴백 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견원지간이던 리엄 갤러거(보컬)-노엘 갤러거(기타) 형제가 다시 의기투합한 배경에 대해 여러 설이 난무한다. 형제 모두 오랜 팬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을 포함해서다. 그 가운데는 노엘이 지난해 9월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며 지급하게 된 천문학적 위자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오아시스 재결합 소식에 흥분한 광팬은 요 며칠 사이에 애먼 데 가서 ‘너희는 재결합 안 하니?’라는 댓글을 남겼다. 오아시스와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출신인 전설적 밴드 스미스(The Smiths)의 멤버 계정 말이다. 1982년 결성된 스미스는 모리시(보컬)와 조니 마(기타)의 갈등으로 단 5년 만인 1987년 해체했지만, 오아시스부터 라디오헤드까지 수많은 후배에게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끼쳤다.

2006년, 모리시는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팝코노믹스 4회-페스트노믹스 참고) 측에서 코첼라에서 재결합 무대를 선보이는 조건으로 500만파운드(약 87억원)를 제시했다고 털어놨다. 2007년에는 여러 공연 기획사가 컨소시엄을 이뤄 스미스에게 월드 투어 50회 공연을 조건으로 7500만파운드(약 1319억원)의 개런티를 제안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떠돌았다. 조니 마는 2009년 라디오에 출연해 단 5회 정도의 스미스 재결합 공연에 5000만파운드(약 879억원)의 출연료를 제안받은 사실도 공개했다. 참고로 스미스는 1987년 이후 단 한 번도 재결합하지 않았다. 조니 마는 스미스 재결합 요구에 대해, ‘모리시는 (영국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와 비슷한 사람으로서, 스미스가 재결합 공연을 하려면 내가 아니라 나이절 패라지를 새 기타리스트로 들이는 게 나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모리시는 재결합을 하느니 차라리 내 신체 주요 부위를 먹겠다고 했는데 이는 생각보다 더 극언이다. 왜냐면 모리시는 극단적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UK 차트 1위 앨범이자 1985년 2집 제목은 ‘Meat is Murder(육식은 살인)’이다. 모리시는 솔로 투어 때마다 잔인하게 살육되는 가축의 영상을 무대 뒤 스크린에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멤버 간 해묵은 원한을 오장육부 깊숙이 넣어두고서라도, 매년 적잖은 밴드가 해체를 번복하고 재결합한다. 최근 오아시스의 7, 8월 영국·아일랜드 투어 티켓 예매에 전 세계 수백만 팬이 ‘참전’한 이유는 뭘까. 이 형제가 함께 순회공연을 하다 언제 또 쌈박질하고 헤어질지 모르니 최대한 재결합 초반에 봐야 한다는 팬의 위기감과 절박함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과거의 전설, 미래에 대한 기대. 그 사이에서 음악 팬과 음악 산업은 절망하고 희망하며 울고 웃는다. 2025년에는 또 어떤 재결합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