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시뮬라크르(라틴어 시뮬라크룸에서 유래해 시늉·흉내·모의를 의미하는 단어)가 실재(實在)에서 파생됐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실재가 된다고 주장했다.
미술사학자인 김현화 숙명여대 미술대학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이 같은 이론이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와 맞닿아있는 것으로 봤다. 1970년대 중반부터 환영(幻影)이 회화의 본질임을 선언하며 극사실화를 그린 김강용·고영훈·이석주 등은 자신들의 회화가 단순히 대상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또 다른 실재'가 됐다고 주장했다. 모사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독립된 개체가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한국 극사실화는 모더니즘 예술과 궤를 같이 한다. 구상화임에도 추상성을 지닌다는 것이 한국 극사실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김강용(1950~) 화백은 한국 극사실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78년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권수안, 김용진, 서정찬, 송윤희, 조덕호, 주태석, 지석철 등 홍익대 동기들과 함께 극사실 회화 경향의 그룹인 '사실과 현실'을 결성했으며 1999년에는 독일 쾰른 아트페어에 참가한 바 있다.
김 화백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모노톤의 회벽돌을 주로 그렸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컬러풀한 벽돌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경기 파주에 위치한 스튜디오끼에서 김 화백의 개인전이 오는 2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다채로운 색과 극사실적인 벽돌을 결합한 작가 고유의 독창적 회화 작품들이 대거 공개됐다. 작가는 전국 각지에서 직접 수집한 모래와 접착제를 혼합해 화면에 펴 바른 뒤, 그 위에 유화 물감을 덧발라 작업했다.
스튜디오 끼의 이광기 대표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벽돌을 그리는 김강용 선생을 초대해 우리 삶의 다양한 변주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실제보다 더 강력한 벽돌미감 뒤에는 인간 삶의 다양한 변주가 담겨 있어, 관객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재현된 벽돌' 이면에 감춰진 '감성과 이성의 이중 변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