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세계 질서를 뒤흔든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만 해도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운 '세계의 공장'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AI,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통신, 로봇,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 산업 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신간 '테크노 스테이트 차이나'는 이러한 변화를 '기술 국가(Techno State)'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정구현 제이캠퍼스 원장, 김영배 카이스트 명예교수, 김용준 전 성균관대 경영대 교수, 김창현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 노은영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등 경영전략 및 중국 전문가 5인이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은 기술을 단순한 산업 경쟁력의 수단이 아닌 국가 생존과 체제 정당성, 산업 안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바라보는 중국의 전략을 집중 조명한다. 이 책은 지난 10일 '2026 정진기언론문화상' 경제경영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책은 '중국은 어떻게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자립국으로 변모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와 반도체 제재, 핵심 장비 및 소프트웨어 통제에도 중국의 기술 발전이 멈추지 않는 이유를 추적하며, 외부 압박이 오히려 기술 자립과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한 배경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중국의 기술 혁신을 특정 기업의 성공이나 개별 산업정책의 성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기관, 지방정부, 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국가 혁신 시스템'의 결과로 해석한다. 중국 혁신을 거품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미국을 대체할 기술 패권국으로 과장하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성과와 한계, 강점과 위험을 균형 있게 짚어낸다.
특히 '국가가 설계하고 시장이 검증하는' 중국식 혁신 모델에 주목한다. 중앙정부가 전략을 제시하면 지방정부는 실험하고, 기업은 이를 산업화한다. 성공 사례는 전국으로 확산하고 실패한 정책은 수정되는 구조다. 저자들은 이를 '거대한 국가 실험실'에 비유한다.
대표 사례가 전기차 산업이다. 중국은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 구축으로 초기 시장을 조성했고,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격과 성능,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배터리와 소재, 반도체, 플랫폼 기업까지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전기차를 AI와 데이터, 에너지 산업이 결합된 전략 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분석이다.
책의 마지막 질문은 한국을 향한다. 저자들은 미·중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는 초격차 기술력을 유지하는 한편, 시장과 공급망 측면에서는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필요한 전략적 위치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의 생존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책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단순한 성장 스토리가 아닌 국가 시스템의 진화 과정으로 분석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