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몰락의 기록 표지

"하야(下野)를 하든지 탄핵 당하든지… (중략) …지휘관들이 지금 자신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게 헌법에 맞는 거냐 하는 것을 잘 살펴야 합니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22분. 노(老) 기자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 직후 유튜브 방송용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같은 날 새벽 4시 59분 '윤석열, 6시간 만에 항복! 계엄령 해제!'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 하나를 더 올렸다. '55년 차' 기자의 취재·보도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12.3 계엄부터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8:0 파면과 국민의힘 조기 대선 패배, 이재명 정부의 등장까지 드라마틱했던 최근 한국 정치 6개월을 책으로 펴냈다.

사실, 윤석열의 행보는 취임 직후부터 수상했다. 테크놀로지 분야 전문 기자인 내가 여러 신문의 정치 칼럼을 애독하기 시작한 것도 윤석열 때문이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저자는 12.3 계엄을 '윤석열의 망상적, 발작적 군대 동원'으로 규정한다. 청와대 이전, 이준석 몰아내기, 의대 증원 2000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뿌리는 같다. 주술과 음모론에 넘어간 권력자의 판단 착오와 분노를 일삼는 국정 운영이다.

국가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의료 제도와 국방인데, 윤석열은 이 두 가지를 허물어 버렸다. 저자는 의료 제도 붕괴만으로도 탄핵감이라고 했다.

애매모호한 서술을 피하고 명쾌하고 노련하게 써내려간 문장 덕분에 책장이 잘 넘어간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 아래에서 묵직한 덩어리가 차오른다.

1973년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빈번하고 긴밀한 관계(강한 고리)보다 느슨하고 접촉이 드문 관계(약한 고리·Weak Ties)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약한 고리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새 정보와 자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보수 논객'이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고 비판하자 그 자체가 화제가 됐다. 사회과학 논문 중 가장 많은 인용 횟수를 자랑하는 논문의 요지대로 저자는 계엄 국면에서 대한민국의 좌우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약한 고리'로 활약했다. 지난 6개월간 방송 출연과 신문·잡지 인터뷰 횟수가 약 100회에 이른다.

뉴스 전문 방송에서는 "8-0 윤석열 파면을 확신"하고 진보 성향의 방송에서는 "한덕수 출마는 원천적 불공정 게임"이라고 쏘아붙였다. 보수 성향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부당한 지시에 응하지 않는 '적법 항명'에서 희망을 본다"고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도 두 번 만났다. 책에는 그와 나눈 5시간 대화도 자세히 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말은 쉬우면서도 핵심을 찔렀다고 했다. '윤석열은 화를 잘 내는 사람, 이재명은 잘 웃는 사람'이라는 일대일 평가도 내렸다.

보수 퇴행과 궤멸에 대한 지면 할애도 상당하다. 국민의힘 지지 기반은 대구·경북, 70대 이상으로 축소 고립된 상황. 저자는 "일부 보수 세력은 중국을 부정선거 배후로 규정하고 반중(反中) 선동을 하는 데, 이는 좌파가 반일(反日) 종족주의를 선동하는 것보다 더 유치하다"고 했다.

저자는 보수 세력이 유능함을 상실한 이유로 '무사안일(無事安逸)'을 꼽는다. '이재명만 욕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는 생각, 한미 동맹에 의존하면 안보는 해결된다는 생각 등이다. 황교안, 윤석열은 선거 참패 후 음모론에 빠졌다. 실패에 대해 '정신 승리'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민주주의는 대화"라고 말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1+1=2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데, 입맛에 맞는 가짜 뉴스가 쉽게 생산되고 허위조작 정보라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탓에 대화는커녕 상식도 쉽게 허물어지는 게 요즘 자유주의, 민주주의 세상이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도널드 트럼프도 부정 선거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루디 줄리아니(전 뉴욕 시장)는 부정 선거를 거듭 주장하다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거액의 배상금 때문에 개인 파산 신청까지 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줄리아니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주겠다고 한다.

두 나라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한 아이러니를 보면서 저자에게 한국이라는 범주를 넘어선 질문을 던지고 싶다.

'팩트에 기반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없이 문명을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음모론이 확산되고 장기 정책이 실종되기 일쑤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종의 시스템 위기가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가.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 혁신 생태계를 정비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12.3 계엄 이후 붐비던 시내 밥집에도 냉기가 돈다. 콘서트 티켓 예매율도 뚝 떨어졌다. 프랜차이즈 업체와 점주 갈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무능한 지도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모자라는 역사의 범죄자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다룬 김성한의 소설 『7년 전쟁』에 나오는 이 문구를 수차례 인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선 "윤석열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제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썼다. 그렇게 해달라는 강력한 주문으로 읽힌다.

조갑제 지음|조갑제닷컴|540쪽|2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