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외교, 실패한 외교 표지

예측불허 외교 시대다. 진원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쇼맨십'과 '즉흥성'으로 외교 무대를 난타한다. 기존의 룰과 관행을 일부러 깨뜨리는 방식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지난 5월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농부 집단 살해' 의혹 영상을 틀며 상대를 압박했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불과 3시간을 앞두고서는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고 올리기도 했다.

이 책은 김대중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정상외교, 외교관들의 치열한 협상, 그 이면의 고뇌를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대한민국 외교전 막전막후를 읽다보면 오늘 외교 현장의 행간이 보인다. 저자는 서울과 워싱턴, 도쿄를 오가며 30년 가까이 외교안보 최전선을 취재해 온 기자다.

성공한 외교로 가는 길은 실로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정상들의 우선순위와 의지, 유능한 외교관의 치밀한 뒷받침, 국내외 정치적 상황 등이 정교하게 교집합을 만들어낼 때 큰 산의 고비 하나를 겨우 넘는다. 작은 스텝 하나라도 엇박자를 내면 거센 역풍을 맞는다.

1998년 한·일 45세, 47세 과장 2명(박준우 당시 동북아1과장,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이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역사적인 문서의 초안을 만들었다. 바로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 공동 선언)이다.

당시 일본어 '오와비(おわび)'의 한국어 번역이 큰 쟁점 중 하나였다. 일본 측이 사과보다 더 큰 의미인 사죄를 쓰기로 최종 합의한 시점은 김대중 대통령이 하네다 공항에서 영빈관으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외교안보에 대한 정치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는 실패하는 외교로 가는 지름길. 저자는 "권력을 잡은 후, 생각이 맞지 않는 외교관들을 배척할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일도 많이 봐 왔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권력자들이 외교를 사유화하는 장면도 가감 없이 전한다.

화려한 공식 발표 이면의 갈등과 오판을 따라가다 보면, 외교가 정치·문화·사회·언어가 교차하는 고차방정식의 인간 드라마임을 실감하게 된다. 지정학 질서가 요동치는 이때,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한반도에 손짓하고 있다. 저자는 현 정부의 막전막후도 기록 중일 것이다.

이하원 지음|박영사|294쪽|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