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날./수오서재

호스피스병동에서 죽어가는 환자가 더 살아야 할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할 때, 앞으로 비참한 날들만 남았을 때는 죽음 자체보다 살아간다는 것이 더 벅차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럴 때 환자와 그 가족들은 연명의료를 중단해야 할 지를 두고, 고통과 결단 사이에서 고뇌한다.

1991년 세계 첫 연망의료 중단을 제도화한 미국은 말기 환자, 임종 직전의 환자 모두 가족 혹은 대리인 동의를 통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후 1997년 조력사망도 합법화됐다. 미국에서 조력 사망은 보통 6개월 이하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만 신청할 수 있고, 본인이 약물을 삼켜 죽음에 이른다. 편안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한 책이 나왔다.

미국 인류학자가 쓴 책 '내가 죽는 날'은 수년간 '조력 사망' 현장에 동행하며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기록한 탐구서다.

저자는 미국 오리건주를 비롯해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의 환자, 가족, 의료진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 호흡한다. 현장을 직접 가보며 제도 바깥에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결단, 그리고 연대의 현장을 포착한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고자 하는지, 그 결정을 둘러싼 문화적, 제도적, 정서적 측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책에서는 조력 사망 접근성이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도 알아보려 한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

조력 사망이 막연한 거부감을 유발하는 하나의 이유는 자살과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라서다. 최근까지도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죽음은 일단 '자살'로 칭해졌다. 자살과 다른 형태의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죽음을 사유할 더 미묘한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에 결부된 낙인이나 죄의식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했다. 저자는 조력 사망과 자살을 혼동하는 것은 해롭다고 말한다. 환자는 자살로 판단할까 봐 조력 사망법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유족은 사별 과정에서 단절감과 고립감을 느낀다.

책에는 미국 조력 사망법의 실제 사례도 등장한다. 가족 곁에서 삶을 마감하는 90세 블루스 연주자 켄, 존엄사법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싸우다 마침내 존엄사 자격을 얻게 되는 파킨슨병 활동가 브루스 등의 사연이 등장한다. 또 조력 사망이라는 제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법적 요건, 현실적인 어려움, 낙인에 대한 두려움 등을 살핀다.

책은 우리 사회가 과연 죽음을 어떻게 말하고, 대하고, 선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는 유독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어려움을 느낀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죄인가, 존엄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이 죽음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언어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니타 해닉 지음|수오서재|248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