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과학./심심 출판사

우리가 타인을 쉽게 믿는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랄 필요는 없다. 기업의 입사 면접처럼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을 채용해 믿고 일하며, 호신 용품 없이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어떻게 쌓이며,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고 회복되는 것일까. 신뢰 문제를 둘러싼 신뢰의 메커니즘을 담은 책이 나왔다.

조직행동학자인 저자가 낸 신간 ‘신뢰의 과학’은 신뢰를 쌓고, 유지하며 회복하는 방법 등 신뢰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사이의 신뢰 위반, 빌 클린턴의 불륜 스캔들, 나치의 전쟁범죄 판결과 르완다 집단학살 등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다양한 신뢰 위반 사건을 다루면서 신뢰의 작동 방식과 신뢰 회복을 위한 해결책을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최대 10가지 특성을 고려해 신뢰도를 판단한다. 시간적 여유, 역량, 일관성, 신중함, 공정함, 도덕성, 신의, 열린 마음, 약속 이행, 수용력이다. 각각의 판단 요소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문제는 우리가 타인을 이렇게 쉽게 믿는 데에 있지 않다. 당연하게도 이 신뢰가 무너졌을 때, 즉 신뢰가 위반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신뢰가 위반되는 원인이 다양한 만큼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책에서 저자는 두 가지를 중심으로 신뢰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바로 역랑과 도덕성이다. 보통 이 두 가지 원인에 따라 신뢰 문제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불신이 벌어진 상황이 개인 간인지, 개인과 집단 간인지, 집단과 집단 간인지,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에 따라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각각 달리 모색해야 한다.

신뢰가 무너질 경우 사과가 먼저일까, 해결이 먼저일까. 일반적으로 진심을 담은 사과가 신뢰 회복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뢰 회복 방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업무적으로 얽힌 역량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과가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된다. 이는 사람들이 역량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열 번 못하던 사람이 한두 번 성과를 내면 아무도 몰랐던 그 사람의 능력이 발휘된 것으로 여긴다. 이런 이유로 역량 문제로 인한 신뢰 위반에 있어서 사과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에 반해 사람들은 도덕성에 있어서는 아주 빡빡한 잣대를 들이민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무게를 두고, 도덕적인 사람은 언제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며 이 기준을 한 번이라도 벗어나면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반대로 비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쉬우므로 자신이 얻는 이득이 없다면 대부분 비도덕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역량 위반에 있어서의 사과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수 있지만 도덕성 위반에 있어서 사과는 ‘절대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인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한다.

책은 신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구조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신뢰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점에 있으며, 이 모든 현상을 풀기 위해서는 한 세대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신뢰에 대한 첫 번째 의문점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신뢰 사회로 향해 가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피터 H. 킴 지음 | 강유리 옮김 | 심심 | 440쪽 |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