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자 국내 증시도 급격한 조정을 겪고 있다. AI 산업의 성장이 반도체 산업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옅어지면서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대장주가 흔들리자 코스피 지수 역시 이번 달 들어 33% 급락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닷컴 버블 붕괴 당시와 버금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AI 생태계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월가에서는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파격적인 금융 행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외신을 통해 전해진 엔비디아의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판매자 금융)' 소식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비디아가 오픈AI의 오하이오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관련해 최대 2500억달러(약 368조원) 규모의 신용보강(Credit Enhancement) 제공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비상장사이자 아직 적자를 내고 있는 오픈AI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자, 주요 공급업체인 엔비디아가 직접 보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이런 구조는 AI 산업의 '순환 금융' 우려를 증폭시킨다. 공급업체인 엔비디아가 고객사에게 자금을 대고 그 고객사가 엔비디아의 GPU 등을 구매한다면 AI 수요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하이퍼스케일러뿐 아니라 오픈AI와 같은 AI 모델 개발사가 장기 임차인으로 직접 참여하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다만 프로젝트 규모가 수백억달러에 이르면서 비상장 기업인 오픈AI의 장기 임차계약만으로는 원활한 자금 조달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금융 보증을 제공한다는 소식에 AI 산업의 벤더 파이낸싱에도 관심이 쏠린다. 벤더 파이낸싱이란, 공급업체가 물건을 구매할 돈이 부족한 고객사에 투자 혹은 자금을 빌려주거나 금융기관 대출을 알선해주는 영업 방식을 뜻한다. 고객사는 그 돈으로 공급업체의 제품을 살 수도 있다.

사실 벤더 파이낸싱 자체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반도체 장비와 산업 설비, 항공기 등 대규모 설비 투자 산업에서는 공급업체가 금융기관과 협력하거나 직접 금융을 지원하며 고객의 설비 도입을 지원하는 사례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엔비디아 역시 AI 생태계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비롯해 AI 스타트업 투자, 클라우드 사업자와의 협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AI 생태계 확대를 지원해 왔다.

그런데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례가 과거 벤더 파이낸싱과는 다른 여파를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벤더 파이낸싱이 제품 공급과 투자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논의는 프로젝트의 신용보강으로까지 공급업체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시장은 엔비디아의 잠재적인 신용 부담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된 보도가 나온 직후, 엔비디아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약 9bp 상승했고 시장은 잠재적인 신용 부담 가능성을 즉각 반영했다.

이 연구원은 "프로젝트의 신용보강 지원 가능성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공급업체는 어디까지 금융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며 "GPU를 공급하고, 투자하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의 신용보강까지 담당하게 된다면, 벤더 파이낸싱의 범위는 예상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공급업체가 감당해야 할 역할도 함께 커지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런 구조가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는 앞으로 시장이 확인해야 할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