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의 공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메모리 가격과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도 따라간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투자자들이 보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한 번 크게 버는 기업보다 그 이익을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기업인지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애플, 아마존 등이 잇달아 실적을 발표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대부분 양호한 성적표가 예상된다. 정작 시장이 궁금해하는 것은 '얼마를 벌었는가'보다 '다음에도 계속 벌 수 있는가'다.
대표적으로 투자자들이 확인하려는 것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CAPEX) 계획과 장기공급계약(LTA),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여부다.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 이어져야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도 장기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 반응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알파벳은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설비투자 규모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가는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AI 투자 자체보다 그 막대한 투자가 결국 현금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투자자들이 따져보기 시작한 영향이다.
국내 메모리 업체들도 이제는 같은 잣대로 평가받고 있다. 메모리 가격만으로 기업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안정적인 주문과 현금흐름을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새로운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가 장기계약이다. 최근 마이크론은 기존보다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의 공급 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히 거래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구매 물량까지 확보하는 계약이다. 반도체 가격이 흔들려도 실적의 하방을 지켜주는 장치인 셈이다.
국내 기업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한 공동 투자와 협력이 잇따르고 있다. 단순히 칩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를 넘어 고객과 함께 투자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구조로 역할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하나증권은 이런 변화를 '희소성을 반복 가능한 이익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반도체가 부족해서 돈을 버는 시대에서 주문과 계약, 서비스까지 연결해 꾸준히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드는 기업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메모리 가격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메모리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단순히 가격을 낮추자는 의미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단기적으로는 마진이 일부 줄더라도 고객의 부담을 낮춰 시장 자체를 키우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큰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략에 가깝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가 이어질 경우 공급 부족이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피크 이익을 한 번 크게 만드는 것보다 시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공급 부족은 실적을 만들지만 공생은 밸류에이션을 만든다"며 "여전히 주도주를 사는 전략은 유효하지만 희소성을 반복 가능한 이익으로 바꾸는 기업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실적 시즌에서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분기 실적이 얼마나 좋았는지가 아니라 AI 주문이 계속 이어지는지, 장기계약이 늘어나는지, 고객이 쉽게 떠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반도체 투자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