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의 역대 최대 실적이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은 한 분기 성적보다 이미 그다음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당장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미국 빅테크들이 인공지능(AI) 투자를 계속할 것인지, 그리고 그 막대한 투자가 실제 돈을 버는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는지가 실적 시즌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시장이 실적 자체보다 앞으로 반도체 이익 증가세가 얼마나 이어질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의미다.
권순호 대신증권(003540) 연구원은 이번 실적 시즌을 한국과 미국 시장이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국내 시장은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계속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는 반면, 미국 시장은 AI 투자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이 정당화되는지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권 연구원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의 관건은 설비투자의 정당성 확보이고, 한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수혜 업종의 이익 상승 속도"라며 "이번 실적 시즌의 관건은 설비투자(CAPEX)를 감당할 수 있는 이익 흐름의 가능성이 보이는가"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어닝 시즌의 승부처는 미국 빅테크의 컨퍼런스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AI 투자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선언보다 그 투자가 얼마나 생산성을 높이고 있는지를 기업들이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권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기업들의 어닝콜에서는 AI 관련 언급 가운데 투자와 비용, 매출이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눈에 띄는 변화는 '생산성'이다. 올해 1분기 미국 기업들의 컨퍼런스콜에서 생산성 관련 언급은 전년 동기보다 1.7배 증가했다. AI를 도입한 결과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비용이 절감됐다는 설명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 시장을 완전히 설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생산성 향상을 언급한 기업은 많았지만 실제 수치로 효과를 제시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권 연구원은 생산성 관련 발언 가운데 구체적인 수치를 함께 제시한 비중은 7%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AI 수요측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과 AI 매출 언급이 늘어난다면 투자 흐름에는 긍정적일 것"이라며 "이번 실적 시즌에서 생산성이 숫자로 확인되는지가 AI 투자 확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반도체 업종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미국 빅테크들이 AI 투자의 효과를 입증할수록 설비투자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이익 전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메모리 가격 부담이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컨퍼런스콜에서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언급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곧바로 반도체 다운사이클의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권 연구원은 "메모리 비용 언급의 확대만으로 다운사이클을 우려하는 것은 확대 해석에 가깝다"며 "오히려 공급 부족 사이클의 강도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최근 주가 조정을 펀더멘털보다 투자 심리가 앞서 반응한 결과로 해석했다.
그는 "실적이 꺾인 것이 아니라 투자심리가 이를 앞질러 위축된 국면"이라며 "결국 주가는 실적 추정치가 상향되는 흐름에 반영되는 만큼 향후 실적 전망이 계속 올라간다면 주가도 다시 그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7월 말 삼성전자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 실적 가이던스와 장기공급계약(LTA)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실적 발표에서 AI 연산 수요 확대나 CAPEX 전망 상향이 확인된다면 반도체 실적 성장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