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종전 합의를 이루면서 지정학적 위기에 국내 증시를 이탈했던 외국인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선 그동안 외국인이 가장 많이 비워낸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증시가 큰 폭 상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란과 종전 합의 완료를 선언했다. 이번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이 통행료 없이 전면 개방되고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도 즉시 해제될 예정이다. 양국은 19일 스위스에서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공식 서명한 뒤 본격적인 핵 협상과 경제적 보상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고공 행진하던 국제 유가는 하락했다. 런던 ICE 선물 시장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월 초 이후 처음 80달러 선에 진입했다. 유가 하락은 달러화 약세를 자극하는 핵심 연결 고리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유가가 하향 안정화되고 안전 자산 선호 심리도 완화돼 달러화 하락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달러화 약세 전환은 국내 증시를 비롯한 신흥국 자산에 단비가 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매크로(거시경제) 부담이 완화되면 우리 증시에 외국인의 귀환이 진행되고, 주요 수혜 업종은 '반도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005930)의 외국인 지분율은 47.6%로 과거 10년 평균치인 53%를 밑돌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의 외국인 지분율 역시 51.1%로 지난 10년 평균(51%) 수준으로 낮아졌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반도체 포지션이 비어 있어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공간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동안 외국인의 반도체 기피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은 대만 증시에서도 인공지능(AI) 강세장을 주도하며 글로벌 증시 대비 시장 수익률을 상회(아웃퍼폼)했던 TSMC를 집중 매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매도세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 악화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모두 실적 모멘텀은 여전히 견고하다는게 다수 전문가의 평가다.
AI 반도체 사이클에 문제가 생겼다기보다 유가 급등과 달러 강세 압력이 커지자 글로벌 펀드들이 자산 배분 과정에서 지수 영향력이 크고 주가 움직임이 민감한 '고베타'(High Beta) 업종인 반도체 포지션을 기계적으로 축소했다는 분석이다.
김재승 연구원은 "종전 합의로 유가와 달러, 금리 등 매크로 부담이 완화되면 위축됐던 투자 심리가 살아나며 비워뒀던 포지션을 빠르게 복원할 수 있다"며 "이번달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 주요 일정이 마무리되고, 다음달 본격적인 실적 시즌에 진입하면서 긍정적인 성적표가 확인된다면 외국인의 귀환은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