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꿈의 숫자였던 5000포인트를 우습게 넘은 코스피 지수는 이제 1만포인트를 향하고 있다. 미국발 긴축 우려로 증시가 폭락한 8일에도 증권가에선 오히려 "싸게 살 기회"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낙관론의 근거는 명확하다. 지금은 '닷컴 버블' 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넷 기업들은 미래 성장 기대만으로 주가가 치솟았지만, AI 시대 반도체 기업들은 실제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거 아니냐"라고 의심하던 투자자 상당수가 "이 정도 이익이면 높은 주가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런데 최근 북미 투자은행 BCA리서치는 시장의 대세론과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지금 시장에 '이익(Earnings)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버블이라고 하면 보통 실체 없는 기대감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BCA리서치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했던 버블은 오히려 기업 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형성된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이익이 급증한 기업의 호실적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AI 성장으로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AI의 등장으로 반도체 산업은 더이상 과거와 같이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 산업으로 변모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BCA리서치는 "현재 AI 사이클 역시 반도체 산업 특유의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붐(Boom)-버스트(Bust)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AI 반도체와 HBM 업체들의 이익 증가 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도체 사이클 중 하나에 해당하지만, 산업의 본질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지금 반도체 기업의 높은 수익성은 기술 경쟁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심한 공급 부족의 영향도 크다.
문제는 공급 부족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생산능력이 늘어나고 경쟁사가 추격해 오면 반도체 회사가 지금 쥐고 있는 가격 결정력은 약해진다. 그 순간 초과 이익도 정상화되기 시작한다.
물론 AI 열풍이 당장 끝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AI 산업이 '이익 버블'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 BCA리서치 역시 GPU 가격과 HBM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했다. AI 수요 둔화 신호도 아직 뚜렷하지 않아 AI 사이클이 당장 종료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이들이 경계하는 것은 시장의 과도한 기대다. 지금 기술주 주가를 보면 상당수 투자자가 AI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넘어, 이 호황 사이클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투자자들은 늘 그 지속 기간을 과대평가했다.
BCA리서치는 투자자들이 잊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도 강조한다. 주가가 실적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점이다. 과거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인텔도 실적이 무너지기 전에 주가가 먼저 고점을 찍고 하락했다. 시장은 늘 미래를 먼저 반영한다.
결국 높은 주가를 지지하는 것은 이미 거둔 역대급 이익이 아니라, 막대한 이익 증가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버블은 대부분 그 믿음이 가장 강할 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