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전쟁 리스크를 딛고 강한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모든 투자자가 이익을 내고 있는 건 아니다. 증시는 오르는데 계좌 수익률은 낮은 투자자라면 이유가 있다. 지금 시장은 특정 섹터와 종목으로만 돈이 몰리는 극단적인 쏠림 장세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국가·지역 선택보다 섹터·종목 선택이 더 중요해졌다고 평가한다. 미국에 투자하든, 한국에 투자하든, 유럽에 투자하든 지역을 잘 고르는 것보다 어떤 업종, 어떤 종목을 담느냐가 수익률을 결정하게 됐다는 얘기다.
지수가 오르더라도 종목마다 희비가 크게 엇갈린다. 지수 수익률만 믿고 다수 업종에 고루 투자하는 전략을 썼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이런 현상은 AI와 반도체 관련 기술주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I·반도체 관련 기술주가 급등하는 동안 가치주, 경기 방어주는 소외됐고, 종목 간 수익률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오른 주식이 더 오르고, 소외된 주식은 더 소외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4년 이후 AI 기술 혁신이 불러온 산업 구조의 재편은 이 같은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IT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섹터가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48%까지 치솟았다. 닷컴 버블이 절정이던 2000년대 초반에도 이 두 섹터의 비중은 40% 수준이었다. 시장 집중도를 나타내는 허핀달-허시만 지수(HHI)는 현재 0.19로, 이미 닷컴 버블 당시(0.17)를 뛰어넘었다.
전문가들은 기술주 중심으로 섹터가 좁아진 상승장일 경우 이들이 흔들릴 때 시장 전체를 끌어내릴 위험을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 종목 간 상관관계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국가 간 증시는 오히려 더 밀접하게 움직이고 있다. MSCI 기준 주요국 주가지수와 글로벌 주식(MSCI ACWI) 간 평균 수익률 상관도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3월을 기점으로 다시 반등하고 있다.
중동 분쟁이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면서 원유 수입국들이 동시에 타격을 받았고, 원유 관련 제품의 가격 상승이 시차를 두고 전 세계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주식, 유럽 주식, 신흥국 주식을 나눠 담아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지역 분산 투자 전략의 효과가 예전만 못하게 됐다. 글로벌 매크로 충격이 오면 어느 나라 증시든 함께 흔들리는 구조가 됐다.
투자자들은 내가 담은 기업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수요를 잡고 있는가, 아니면 경기에 민감한 수요에 기대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섹터별 실적을 보면 차이는 극명하다.
AI 서비스에 대한 강한 수요를 등에 업은 IT와 커뮤니케이션 업종은 매출총이익률이 전년 대비 가장 빠르게 높아졌다. 반면, 필수소비재와 유틸리티는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을 가격에 반영시키지 못하면서 이익이 줄었다.
국내 역시 반도체·AI, 이차전지, 바이오, 방산은 같은 수출 대형주라도 섹터별 모멘텀과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전혀 다른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 개인 투자자의 영향력 확대도 특정 테마로 수급 쏠림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현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AI 투자 사이클의 수혜가 산업별로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소비 심리 악화에 민감한 일반 소비재보다 경기와 무관하게 수요가 발생하는 강력한 현금 흐름을 가진 대형 기술주 중심의 포트폴리오가 유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