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아버지가 보유 중인 송파구 소재 아파트를 증여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아버지는 4년 전 주택담보대출 10억원을 받아 20억원에 이 아파트를 샀다. 현재 실거래 가격은 31억원가량으로, 남은 대출금은 8억원이다. 김씨는 집값이 더 오르기 전 일찍 주택을 증여받아 증여세를 낮추고, 채무는 승계받은 후 갚아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은행은 남은 빚 8억원 전액에 대한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25억원 초과 주택은 대출 한도를 최대 2억원으로 제한한 규제가 적용돼 나머지 6억원을 바로 상환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김씨는 증여를 취소하기로 했다.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주택 증여가 급증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까지 서울의 집합 건물(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등) 증여 건수는 7708건으로, 3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까지 막히자, 김씨와 같이 집에 낀 빚도 함께 물려받는 부담부증여를 문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부담부증여란 부담을 지는 증여란 뜻으로, 재산을 증여할 때 채무까지 함께 넘기는 것을 말한다. 주택을 자식에게 증여하면서 대출금이나 임대보증금도 같이 물려주는 방식이다. 부담부증여의 장점은 채무엔 증여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31억원 아파트를 채무 없이 증여할 땐 증여세로 10억원을 내야 하는데, 부담부증여 땐 채무를 뺀 금액(31억원-8억원=23억원)에만 증여세가 매겨져 7억원을 내면 된다. 채무 8억원에 대해선 증여자인 김씨의 아버지가 양도소득세를 내는 구조다.
양도세를 고려하면 부담부증여가 꼭 절세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자녀가 증여세를 감당할 만한 현금 여력이 당장 충분치 않을 때 쓸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빚은 승계받아 차근히 갚아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 지역 내 대출 규제 시행 후 증여 시 채무 전액을 승계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여를 통한 대출 승계라곤 하나, 은행에선 신규 대출로 취급하기 때문에 대출 규제가 적용된다"며 "금융 소비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연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따져볼 뿐 아니라 대출 규제 등을 적용해 대출 한도를 새로 산정하기 때문에 대출금 전액 승계가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 만약 잔여 대출금 6억원을 납부하면, 채무 2억원만 승계받는 조건하에 주택을 증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김씨의 아버지가 대출금 6억원을 대신 갚아주면 이 또한 증여로 간주돼 김씨는 6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증여세는 증여를 받는 사람이 내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상속은 대출 규제와 상관없이 전액 채무 승계가 가능하다.
한편 최근 국세청은 부담부증여를 활용한 편법 증여가 늘자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부담부증여를 활용해 대출 상환을 자녀가 한 것처럼 꾸미고 생활비를 부모가 대신 부담하는 방식,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사실상 증여하는 방식 등 편법 증여 의심 사례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