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서울에서 빌라 두채로 임대업을 하던 김씨(70)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가족은 실의에 빠졌다. 장례를 치르고 슬퍼하는 것도 잠시, 김씨의 아내와 두 아들은 당장 재산 상속부터 걱정해야 했다. 김씨가 보유한 빌라 두채의 가치는 시가로 50억원 상당이었다. 평소 김씨의 세무 업무를 돕던 세무사는 공제금액을 제하더라도 상속세가 15억원가량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씨의 아내는 가정주부였고 첫째 아들은 최근 이사를 하면서 목돈이 없다고 했다. 둘째 아들 역시 해외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상속세 재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김씨 유족은 빌라를 팔아서 상속세를 마련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상속세를 여러 해 나눠서 낼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상속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사망한 경우 유족은 갑자기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하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속세 문제를 놓고 가족이 분쟁을 벌이는 사례도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를 낸 사람은 총 1만9944명이었다. 2022년(1만5760명)과 비교하면 26.5%나 급증했다. 이들은 평균 6억원의 상속세를 냈다. 상속세는 현금 납부가 원칙이다. 거액의 자산가가 아니라면 6억원의 현금 자산을 평소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상속세는 상속 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단, 상속인들이 모두 해외에 있다면 신고 기간을 9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만약 상속 재산을 처분해 상속세를 마련할 계획이라면 이 기간 내에 매각을 마무리해야 한다.

당장 현금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 세 가지를 알아봤다.

첫째, 분납제도다. 분납제도는 상속세가 1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2개월 이내에 분할해 납부할 수 있다. 하지만 유예 기간이 짧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연부연납제도다. 상속세를 10년 동안 분납할 수 있다. 총 상속세를 11로 나누고 상속세 신고 시 11분의 1을 납부하고 이후 10년간 10회로 나눠서 낼 수 있다. 상속세가 2000만원을 초과하고, 과세 당국에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세금을 10년 분납하는 만큼 연 3.5%의 이자도 내야 한다.

연부연납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도 활용한 제도다. 삼성가는 2020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약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다. 구 회장도 2018년부터 72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5년간 분납했다.

요건을 갖추지 않고 연부연납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면 가산세를 포함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픽=정서희

마지막은 물납제도다. 상속세는 현금 납부가 원칙이지만,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같은 재산으로 납부하는 것도 허용한다. 상속받은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이 상속 재산의 50%를 넘겨야 한다. 또 상속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해야 한다. 요건을 갖춘 경우 상속세 신고기한까지 관할세무서에 물납을 신청하면 된다.

넥슨 총수 일가가 물납을 활용해 상속세를 낸 경우다. 넥슨의 창업자인 고(故) 김정주 회장 유가족은 지주회사 NXC 지분 29.3%(85만2190주)를 기획재정부에 물납하는 방식으로 4조7000억원의 상속세를 냈다.

물납 방식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물납재산은 시가평가로 가치를 책정하는데, 실제 가치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사례에서 언급한 김씨 유가족의 경우 빌라 두채 시세를 50억원으로 보고 있지만, 시가평가에서 이보다 낮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납 가능한 재산의 요건도 까다롭다. 부동산의 경우 지분 구조가 다소 복잡하거나 당장 현금화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물납 대상에서 제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