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18년 2월 임대업을 하는 누나에게 현금 5000만원을 빌려줬다. 이후 2주 뒤에 4900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돌려받았다. 그로부터 4년 뒤 국세청은 A씨가 누나로부터 5000만원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 635만원을 부과했다. A씨는 불복해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1일 서울행정법원은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현금으로 전달하면서 계약서나 차용증, 영수증 등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라며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살면서 가족에게 돈을 빌리는 일은 빈번하다. 그러나 가족 간 금전거래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국세청은 가족 간 돈을 빌려주는 거래, 즉 금전소비대차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증여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짜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닌 ‘대가가 있는 거래’라는 점을 입증해야 증여세를 물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차용증을 작성하고, 합당한 수준의 이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겨야 한다. 가족 간 금전거래 시 알아두면 유용한 절세 팁을 살펴보자.
세법은 가족 간 금전소비대차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금전소비대차의 형태를 빌어 편법으로 증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가족 간 모든 거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상속 증여 세금 상식’에는 “부모와 자녀 간의 금전거래는 증여가 아닌 차입금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며 “제3자 간 주고 받는 통상적인 차용증과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하고, 차용증 내용대로 이자를 지급해야 증여가 아닌 차입금으로 보고 있다”고 적혀있다.
예를 들어 B씨가 부모에게 3억원을 빌려 주택 구매 자금으로 활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B씨가 이후 원금을 갚았다고 하더라도, 차용증(금전소비대차계약서)과 원리금 상환 내역 등의 증빙 서류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을 경우 국세청은 A씨의 사례처럼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
차용증에는 차용 일자, 금액, 기간, 이자율, 원리금 상환 방법 등을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차용증 양식은 법원 사이트에서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차용증 작성 후에는 법무사 등으로부터 ‘공증’을 받거나 우체국 ‘내용증명’을 통해 거래 사실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율을 어떻게 산정하느냐도 중요하다. 세법에서 정한 법정 이자율은 4.6%인데, 만약 이보다 낮은 금리 또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줄 경우 덜 낸 이자에 대해선 증여세를 부과한다. 단, 덜 낸 이자가 연간 10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는 세금을 매기진 않는다. 이를 역산하면 2억1700만원까지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더라도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또 법정 이자율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줄 경우, 이자율을 2.3%로 산정하면 4억2000만원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만약 B씨의 부모가 현금 여유가 없어 보유 중인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 B씨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면 증여세는 어떻게 매겨질까. 마찬가지로 법정 이자율(4.6%)보다 적게 부담한 이자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고, 덜 낸 이자가 1000만원 미만이면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B씨가 부모의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10억원을 연 4% 이자율로 빌렸다면, 법정이자율과 실제 대출이자율의 차이(4.6%-4%)인 0.6%에 해당하는 금액이 증여액이 된다. 이 경우 연간 이자가 600만원(10억×0.6%)으로 1000만원을 넘지 않아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자소득세가 부과되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B씨가 이자 지급 시 27.5%(지방소득세 포함)를 원천징수해 다음 달 10일까지 ‘원천징수 이행 상황 신고서’를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또 다음 해 2월 말까지 ‘이자소득 지급명세서’를 내야 한다. 이자를 받는 B씨의 부모는 다른 이자·배당 소득과 합산한 금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세 신고·납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