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찾아간 서울 이대 상권에는 내부에 건축자재가 널브러진 폐업 중인 상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대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너덧 개 상가 중 하나씩은 ‘철거 예정’ ‘임대문의’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올 들어서는 학생들 사이에 유명세가 있었던 맛집 식당마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었다.

지난 19일 오후 12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한 건물 전체가 공실이었다. 건물에는 ‘철거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조연우 기자

이대 맛집으로 대기까지 있던 한 양식당 업주는 “엔데믹이 오면 상권이 활성화될 줄 알고 힘겹게 버텼지만, 유동 인구가 줄어 매출이 줄고 식자재, 인건비, 임대료는 올라서 결국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며 “장사가 잘될 때 2호점까지 확장할 계획이었는데 폐업 수순을 밟게 돼서 아쉽고 속상하다”고 했다.

10년 넘게 브런치 가게를 운영한 A씨도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그는 “점심때 학생이나 중국인 손님으로 붐볐지만, 물가가 오르면서 외식에 부담을 느끼다 보니 손님 발길이 끊겼다”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알바생 없이 혼자 일하기도 했지만, 8개월 넘게 적자였고 월세가 밀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대학가 상권에서 초저가 카페, 식당, 무인상점 등은 살아남는 반면 평범한 가격대에 있는 식당은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학생들과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대학가 상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대학가 상권이 무너지는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행정안전부 지방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서대문구의 폐업률은 19.8%로 전년(15.5%) 대비 4.3%포인트(p) 증가했다. 서대문구는 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그 만큼 물가에 예민한 지역이다.

반면, 최근 서대문구 인근에 있는 마포구 서강대 앞에는 인건비가 들지 않는 무인가게나 초저가 식당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서강대 상권에 있는 분식점만 50여 곳 확인된다. 학식보다 저렴한 무인 라면 가게, 분식점 등은 5000원 미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지난 19일 오후 1시쯤 서강대 남문 앞 한 김밥 가게에는 식사하러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김밥 가격은 3000~5000원대다. /조연우 기자

이날 오후 1시 서강대 앞 3000원대 김밥 가게는 식사하러 온 학생들이 몰려 주문이 한참 밀려있었다. 학식은 5000원대 이상인데 김밥 가게에서 판매하는 기본 김밥은 3500원, 우엉김밥과 유부김밥은 4000~4500원이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1)씨는 “학식이나 편의점 김밥보다 맛있고 저렴해서 자주 오는 편”이라며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식이나 분식 등으로 끼니 때우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고 말했다.

김밥 가게 옆에 있는 3500원대 무인 라면 가게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손님이 각자 자신이 먹을 라면을 고른 다음 부재료를 넣고 라면을 직접 끓여 먹는 곳이다. 식사 후 가게를 나오던 고시생 장모(28)씨는 “요즘엔 어디를 가나 한 끼에 1만원은 훌쩍 넘어가는 것 같다”며 “수입이 없어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식당만 찾아다니는데, 일반 분식점 라면보다 2000원정도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8일 오후 1시쯤 서강대 앞 김밥 가게 주문이 밀려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다. /조연우 기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한된 수입으로 물가 상승을 감당하려면 외식 비용 먼저 줄일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