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경복궁역 서울메트로미술관 문이 닫혀 있다. /홍다영 기자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있던 서울메트로미술관이 문을 연지 38년 만에 폐관했다. 하루 5만5000명(작년 12월 기준) 넘게 이용하는 경복궁역에 위치해 시민 뿐만 아니라 경복궁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멈추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던 장소였다. 미술관이 폐관한 것은 통행 편의를 위해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달 경복궁역 서울메트로미술관을 폐관했다고 1일 밝혔다. 이날 찾은 미술관은 예술작품이 걸려있는 대신 휑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던 흰 벽에 붙은 A4용지에는 ‘보수 예정 / 출입 금지’라는 문구만 적혀 있었다. 종로구 주민 심모(41)씨는 “지하철역에서 우리 곁에 있던 미술관이 없어지니 허전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서울메트로미술관은 1986년 지하철 3호선 개통에 맞춰 개관했다.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 하중을 지탱하는 보와 기둥을 거의 쓰지 않고 둥근 아치형으로 천장을 설계해 마치 동굴 속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경복궁역 미술관은 2005년, 2006년, 200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노후 시설을 개선하고 조명, 폐쇄회로(CC)TV 영상, LED 전광판, 냉난방 시설, 최첨단 무인 경비 시스템을 설치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22년 서울 경복궁역에서 진행한 ‘광화원’ 미디어 아트 전시. /문화체육관광부

경복궁역 미술관은 오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데다 접근성이 좋아 시민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기 좋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와대·효자동·삼청동길로 이어지는 경복궁역 4번 출구 근처에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은 무료로 작품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 가는 여유를 갖곤 했다. 전국 규모의 미술 공모전을 개최해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경복궁역 미술관은 1관(180평)과 2관(120평)으로 나눠져 매년 30건 넘는 전시가 진행됐다. 2019년 6월에는 한·중·일 3국 협력 20주년을 기념해 ‘지나온 20년,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다. 2022년 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심 속 문화 공간을 주제로 미디어 아트 전시 ‘광화원’을 진행했는데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감으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였다. 당시 5세대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경주와 서울 한강의 바람, 온도 등 기상 상황에 맞춰 영상과 자연의 소리가 변하도록 매체 예술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프랑스 사진 작가 소피 가먼드가 동물보호단체 한국HSI와 개농장에서 구출된 강아지 17마리를 주제로 지난해 서울 경복궁역에서 진행한 ‘편견을 넘다’ 사진전. /HSI코리아 인스타그램 캡처

2022년 8월에는 국내에서 20여 년간 진행된 금연광고가 걸렸다. 지난해 5월에는 프랑스 사진 작가 소피 가먼드가 동물보호단체 한국HSI와 개 농장에서 구출된 강아지 17마리를 담은 ‘편견을 넘다’ 사진전을 열었다. 국회에서 개 식용 방지법이 통과되기 전으로,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이 해외에 입양된 뒤 변호한 모습을 보여주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렸다.

문제가 된 것은 이런 경복궁역 미술관의 위치다. 미술관이 지하철역 대합실 한가운데에 있어, 전시가 진행되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문을 닫았다. 예술작품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이 때문에 시민들이 미술관을 가로질러 통행하지 못하고 우회해서 이동해야 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미술관을 폐관하는 대신 시민들이 언제든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올해 상반기 중 정비하기로 결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