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인근 골목 곳곳에는 빈 상가들로 가득했다./ 조연우 기자

28일 오전 찾은 이화여대 상권은 유령도시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곳은 한때 ‘제2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골목마다 인적은 드물었고, 상가 곳곳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을 붙인 텅 빈 가게들은 차가운 공기만 마주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활기를 되찾아가는 명동, 홍대 등 다른 상권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날부로 휴업을 결정했다는 신발 가게 업주 홍모씨는 “코로나가 끝나면 명동처럼 이대 상권이 다시 살아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오지 않아 월세를 감당하기도 힘들어 휴업하기로 했다”며 “인근 홍대, 합정과 달리, 이대 상권은 살아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과거 이대 주변은 최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핫플레이스’였다. 지난 1999년 스타벅스와 화장품 브랜드로 유명했던 미샤가 이대 앞에 1호점을 차릴 정도였다. 이후 서울시는 이곳을 ‘쇼핑·관광 권역’으로 지정해 의류 및 잡화, 이·미용원으로 업종을 제한했다. 다른 업종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주차장을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 탓에 없던 규제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연이은 악재로 업종 제한이 ‘악수’가 됐다. 과거 사드 사태로 중국인이 줄어든 데 이어 최근에는 코로나19까지 겹쳤다.

서대문구는 올해 3월 상권 회복을 위해 업종 제한을 해제해 식당·학원·병원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올 수 있게 했지만, 별다른 효과 거두지 못했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폐업한 의류 및 잡화점, 미용실은 무인 아이스크림점, 코인세탁방 등 무인점포들이 차지했다.

2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골목에는 24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24시 코인세탁방 등이 있었다./ 조연우 기자

무인점포는 말 그대로 사람 없이 운영하는 점포다. 아이스크림, 음료, 과자와 같은 간식을 판매하는 무인점포부터 세탁방, 노래방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점포에서는 매장 내 설치된 CC(폐쇄회로)TV들이 손님을 반긴다.

이날 이대 상권 내에서 무인점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열 결음 정도 거리에는 무인 세탁방이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코인 노래방도 여럿 눈에 띄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은 대학생 정모(21)씨는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는데 24시 무인가게가 있어서 배달할 필요 없이 음료수나 과자 같은 간식을 언제든 구매할 수 있다”며 “근처 코인세탁방, 코인노래방도 자취생들이 자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무인점포들이 늘어난 배경은 비용 최소화다. 무인가게 업주 A씨는 “매출은 적더라도 직원 한 명에게 시급 1만원, 하루 8시간, 주 5일로 고용했을 때 지급해야 하는 월 200만원가량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무인점포 확대로는 외부인을 끌어오기 힘들다. 이 때문에 서대문구는 주기적으로 유명 셰프를 불러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등 인구 유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이미 외부인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지역이 아닌, 주거 지역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대 상권에 무인점포가 많아졌다는 것은 관광객, 외부인 대신 주요 소비층인 1인 가구를 겨냥하기 위한 것”이라며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오는 상권 기능이 사라지고, 퇴락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