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정부 예고대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이 나오지 않았지만 다양한 난이도로 변별력을 갖췄다는 분석이 교육계에서 나온다. 일선 교사들과 입시학원은 이번 수능이 작년 수능이나 올해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려웠지만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지문과 선택지를 꼼꼼하게 읽으면 정답을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2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N수생(재수생 이상)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문성 수능 출제위원장(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킬러 문항을 배제했다”며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의 문항을 고르게 출제했다”고 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6일 광주시 남구 설월여자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교문을 나서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국어·수학 모두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려워”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 차이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작년 수능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은 국어가 134점, 수학이 145점으로 수학에서 고득점한 자연계열 수험생에게 유리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올해 9월 모의평가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은 국어가 142점, 수학이 144점으로 차이가 줄어들었다. 표준점수는 개인 원점수가 평균 성적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보여주는 점수로 시험이 어려우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상승한다. 다만 미적분과 기하가 고득점에 유리하게 여겨지는 만큼 이과 강세는 여전히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수능 국어는 작년 수능과 올해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킬러 문항은 없지만 지문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정보를 파악한 뒤 문제를 풀어야 해서 수험생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다. 공통 과목인 10번, 15번, 27번이 변별력 높은 문항으로 꼽힌다. 10번은 ‘데이터에서 결측치와 이상치의 처리 방법’을 다룬 과학 지문을 읽고 이상치가 포함된 직선을 구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교해야 한다. 15번은 ‘노자’에 대한 유학자 왕안석과 오징의 해석을 파악하고 문항에서 제시된 정보가 어느 인물의 입장에 해당하는지 찾아야 한다. 27번은 보기에서 제시된 방법으로 현대 시인 정끝별의 ‘가지가 담을 넘을 때’와 고전 수필인 유한준의 ‘잊음을 논함’을 감상하는 방법을 물었다.

윤혜정 EBS 국어 대표 강사(서울 덕수고 교사)는 이날 수능 출제 경향 브리핑에서 “다양한 난이도의 문항과 선지로 변별력을 확보했다”며 “지문 길이가 특별히 길지 않지만 선지의 정교함과 세심함으로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했다”고 했다.

입시 학원도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초고난도 문제는 없었고 9월 모의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출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 유형과 선택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서 변별력을 갖춘 문항을 만들었고 선지에 매력적인 오답이 많다”고 했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작년 수능보다 변별력을 확보해 국어 영역의 영향력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서는 EBS 연계 강화로 쉽게 접근이 가능했고 문학은 복합 지문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언어와 매체에서 ‘중세 국어의 훈민정음 제자 원리’ 등을 낯설어하는 학생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화법과 작문은 문제 풀이 시간이 변수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청주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학은 작년 수능보다 쉽고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렵다는 분석이다. 사교육에서 배워야 하는 문제 풀이 기술이나 지나친 계산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주관식 단답형 문제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확보했다. 공통 과목 마지막 문항인 주관식 22번은 도함수를 활용해 함수의 극대, 극소를 고려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삼차함수를 찾아야 했다.

선택 과목에서는 30번이 모두 상위권을 변별할 문항으로 꼽혔다. 확률과 통계 30번은 정규 분포와 표준 정규 분포에 대한 문항, 미적분 30번은 정적분으로 정의댄 함수의 극대와 극소를 찾는 문항이었다. 기하 30번은 평면 벡터의 덧셈과 뺄셈을 이용해 주어진 벡터의 크기가 최대인 점의 위치를 찾아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물었다.

심주석 EBS 수학 대표 강사(인천 하늘고 교사)는 “(작년 수능과) 가장 큰 차이는 문제 해석이 빠르다는 점”이라며 “예전에는 조건을 많이 주고 만족시키는 답을 찾도록 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킬러 문항은 풀이 과정이 길게 나오는데 (올해는) 계산량이 상당히 줄었다”고 했다.

남 소장은 “수학은 9월 모의평가보다 까다롭게 출제돼 변별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함수에 대한 추론과 계산이 필요한 공통 과목 22번이 상위권 등급을 가르는 문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만점자 수 관리를 위해 미적분을 조절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실제 학생들의 적응 능력이 어땠을지 채점 결과를 통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 본사 대입수능 분석 상황실에서 강사들이 수능 국어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어 영역은 작년 수능보다 어렵고 올해 9월 모의평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됐다. 영어 1등급을 받은 수험생 비율은 작년 수능이 7.83%, 올해 9월 모의평가는 4.37%다. 영어는 2018년 절대 평가가 도입돼 원점수가 90점 이상이면 1등급을 받는다.

영어는 관광, 중고 거래, 과학자의 미디어 참여 등 친숙한 소재의 지문을 출제한 대신 충실하게 읽고 선택지를 이해해야 정답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33번의 경우 얼굴 사진을 보고 표현된 감정을 인지하는 실험을 소개한 뒤 빈칸 내용을 추론하는 문항으로 익숙한 소재를 이용해 변별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보라 EBS 영어 대표 강사(서울 삼각산고 교사)는 “풀이 기술이 있어야 하는 문항보다 지문을 충실하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 문항을 다수 배치해 변별력을 확보했다”며 “킬러 문항 요소는 배제됐다”고 했다. 추상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거나 공교육에서 배우는 수준보다 어려운 문장 구조로 구성된 문항 등은 출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경기 화성시 나루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입실 전 반려견에게 뽀뽀하고 있다. /뉴스1

◇28년 만에 최고 수준인 N수생, 성적 변수될듯

이번 수능은 정부가 킬러 문항 배제를 예고하며 N수생이 대거 유입됐다. 졸업생 등을 포함한 N수생은 대체로 고3보다 학력이 높다. 올해 수능 응시생은 50만4588명으로 작년보다 3442명 줄었다. 이 중 재학생이 64.7%를 차지한다. N수생과 검정고시생 등의 비율은 35.3%로 1996학년도(37.3%)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올해 수능은 2022학년도에 도입한 문·이과 통합형 체제로 치러졌다. 수험생들은 국어와 수학을 ‘공통+선택 과목’ 체제로 치렀다. 국어는 독서와 문학을 공통 과목으로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중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시험 본다. 수학은 수학Ⅰ과 수학Ⅱ가 공통 과목으로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한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이번 수능의 EBS 교재 연계율은 50%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는 20일까지 수능 문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은 뒤 다음달 8일 성적 통지표를 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