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일주일에 최소 3일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하라는 회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이달 초 직원 개개인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 논란이 됐다.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장했던 아마존은 지난 2월부터 “일주일에 최소 3일은 사무실로 나오라”고 지침을 바꿨다. 직원들의 출근 패턴이 크게 바뀌지 않자 한발 나아가 최근 3~5주 연속으로 주 3일 미만으로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들에게 한 번 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이 본격화되며 지난 3년간 재택근무를 도입했던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키는 경우가 하나둘 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재택근무 증가로 수혜를 봤던 화상회의 프로그램 개발사 줌(zoom)이 본사에서 약 80㎞ 이내에 사는 직원들에게 “회사 근처에 사는 직원들이 주 2회 출근해 동료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는다”라고 공지했다.

한국에서도 소통 부족을 이유로 직원들의 자율에 맡겼던 재택근무를 축소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직원들은 취업 사기, 사실상의 복지 축소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반면 전화, 메일, 메신저로 하기 애매했던 간단한 소통이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비대면 회의에선 확인할 수 없는 표정이나 말투, 뉘앙스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엔데믹이 본격화 되며 국내외에서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사무실 출근을 권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 일러스트=손민균

◇ 카카오·SKT·입생로랑...재택근무 줄이고 사무실 출근 권고

카카오는 직원들에게 출근 장소 상관없이 근무하도록 하다가 지난 3월부터 사무실 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부서별로 재택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카카오ON 근무제’를 도입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개발자들이 혼자 일하기도 하지만 서로 코드를 짠 뒤 리뷰를 하는 등 협력을 해야 할 때가 있다”며 “줌으로 코드 띄우고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소통이 답답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원래 개인이 자유롭게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지난 2월부터 일주일 중 하루만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줌으로는 말의 뉘앙스·행동·표정의 전달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회사에서 설문을 통해 재택근무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사무실 근무를 늘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입생로랑코리아도 완전 재택에서 지난 7월부터 사무실 근무로 전환했다.

‘재택근무는 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업 측 설명은 코로나 기간 진행된 일부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데이비드 홀츠 교수팀이 지난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코로나로 직원 6만1000여명에게 전사적 재택근무를 의무화하기 전후의 이메일과 인스턴트 메시지, 통화, 회의, 근무 시간 등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직원들은 자신이 속한 팀 외부와 소통하는 빈도가 줄었고, 신입이나 친하지 않은 동료와 협력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지 로데히어로 미국 클렘슨대학교 컴퓨터공학 조교수 등이 2020년 글로벌 기업에 재직중인 개발자 6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4%가 재택근무 기간 동료와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놓쳤고 51%가 동료와의 의사소통 용이성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 일부 직원들 ‘취업 사기’ 불만... “하이브리드 근무 확산할 것”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20~30대 직원들 사이에선 소통 부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는 의견과 함께 기업이 갑작스럽게 근무 체계를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는 불만이 제기된다. 작년 국내 한 여행 관련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A 씨는 완전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회사를 선택했는데 지난 3월부터 사무실 출근제로 전환돼 취업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택근무 조건이 있다면 연봉 일부와 바꿀 생각이 있다”며 “이직한다면 주 1~2회라도 재택이 가능한 회사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과 구직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재택근무를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면 이직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계수 세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중간관리자 이상은 온라인 세대가 아니다 보니 자기 품 안에서 실무자들 얼굴을 직접 보며 소통해야 일이 된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는 소통보다는 개인의 성과 달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만족도를 고려해 네이버, 우아한형제들은 완전 재택근무를 하거나 근무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는 작년 7월부터 주5일 재택근무 혹은 주3일 이상 사무실 근무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개발자들은 개발해야 하는 정량적인 양이 정해져 있어서 재택근무로 업무성과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아한 형제들도 올해 초부터 근무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근무지 자율선택제’를 도입했다. 우아한 형제들 관계자는 “우수한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돕고 제주 등 타지에서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만큼 향후 두 가지를 섞은 ‘하이브리드 근무’를 택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채운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회사가 기능적으로 업무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서로 결속력을 다지고 공동체를 느끼는 문화도 필요할 것”이라며 “재택의 비중이 앞으로 더 커지겠지만 대면으로 일하는 문화도 사라지지 않고 하이브리드 형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항상 약속을 잡아야만 볼 수 있는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며 “지나가면서 오며 가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