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X 같네”

8살 아들을 키우는 김모(35)씨는 최근 가족 외식을 하던 중 아이가 숟가락을 던져 훈육에 나섰다. 아이는 숟가락이 엇나간 것이라고 우겼지만, 김씨는 솔직하게 말하라고 아이를 다그쳤다. 그 순간 아이는 ‘X 같다’는 표현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당황한 김씨가 아들에게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추궁하자 아이는 ‘유튜브 영상툰(영상으로 된 만화)’에서 배웠다며 나쁜 말인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영상툰이나 게임 영상 등에 나오는 비속어와 자극적인 표현들이 아이들 일상에 여과 없이 침투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굳어진 잘못된 언어습관은 또래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향한 언어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육계에선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어에 나오는 욕설이나 비하 표현이 ‘교실붕괴’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러스트=손민균

10살 딸을 둔 이모(38)씨도 얼마 전 딸이 같은 반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듣고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딸과 친구들은 이씨 집에 모여 마인크래프트(게임) 유튜브를 함께 시청했는데, 누군가 화면을 조금만 가리면 “미친 XX야”라고 말하는 등 서슴지 않고 욕설을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담임 교사에게 연락해 “혹시 아이들이 교실에서 욕을 쓰면 호되게 혼내달라”고 부탁했지만, 해당 교사는 “이씨 딸뿐만 아니라 해당 영상을 보면서 잘못된 표현 학습하는 애들이 반 이상은 된다”며 “아이들이 보는 영상이더라도 혹시 욕설이 있는지 (집에서도) 미리 확인하고 시청을 허락해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교육계에서는 학생들이 1인 미디어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언어폭력이 심해졌다고 진단한다. 또 욕설이나 비하 표현은 교실 안에서 빠르게 퍼져 교사들도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 당황스러운 지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 과천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정모(27)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등하굣길에 ‘뒤질래’, ‘~새끼’ 같은 말을 쓰는데, 대부분 게임 유튜브나 친구한테 배웠다고 말한다”며 “어릴수록 판단력은 없고 습득력은 좋다 보니 한 명만 (비속어를) 쓰면 교실 전체가 같은 표현을 사용해 버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씨는 “아무리 주의를 줘도 등하굣길이나 학원에서 쓰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어 아이들 간 언어폭력을 일일이 단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서로서로 욕을 하니 부모님들 사이에 ‘민원전(戰)’이 벌어져 교사들도 애를 먹고 있다. 교사들에게 하는 욕은 그냥 주의 한 번 주고 넘어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 “모든 영상에 시청 제한은 어렵지만 표현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인터넷 이용시간은 5시간 40분으로 3년 전(2시간 40분)보다 크게 늘어 초·중·고등학생 중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같은 해 초등학생을 포함해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한 인터넷 플랫폼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이용률은 97.4%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학교 내 언어폭력 빈도도 잦아졌다. 교육청이 발표한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중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9%로 3년 전(2.1%)보다 0.8%p 증가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은 언어폭력으로 약 68.8%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키즈 콘텐츠에 대한 핀셋 규제와 더불어 영상 플랫폼 사업자들의 연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상에 수많은 영상들을 일일이 다 규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아동 시청자를 타깃으로 만든 영상을 추려 선정적인 표현이 난무하지 않도록 제재하자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상의 모든 영상에 시청 연령 제한 등급을 매기는 것은 어려울 테니 어린이들이 볼만한 콘텐츠라도 묶어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상 콘텐츠로 얻는 수익을 영상 제작자와 플랫폼 사업자가 나눠 갖는 만큼 과도한 선정적 표현에 따른 규제도 영상 제작자뿐만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에게 지워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