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주먹으로 창문을 깼어요. 수련회 숙소에서 밤에 너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9시 이후로 못 나가게 했더니 화가 난 거예요.”

서울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김모(28) 씨는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을 떠올리며 말했다. 김 씨는 “품행장애로 추정됐지만 학부모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상담이나 치료를 권유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급을 맡았던 신입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우리 반에도 수업을 어렵게 하는 금쪽이가 있다’는 교사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거나 물건을 파괴하고 학교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정신건강의학과에선 ‘품행장애’로 분류한다.

품행장애는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부모의 방임, 폭력적 가정 분위기 등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면 발병할 수 있다. 이른 나이에 책 대신 스마트폰을 통해 짧은 동영상 콘텐츠를 접한 아이들이 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또래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청소년 환자 수가 늘었는데 제때 치료하지 않아 품행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품행장애가 반사회적 성격 장애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어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학생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다. / 뉴스1

◇ 국내 품행장애 아동·청소년 29만명 추정...ADHD 환자 70%가 19세 미만

품행장애는 정신건강 전문의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에 근거해 진단한다. 대표적으로 ▲사람과 동물에 대한 공격성 ▲재산 파괴 ▲속이기나 훔치기 ▲중대한 규칙 위반을 특징으로 한다.

25일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국내 아동·청소년의 품행장애 유병률(전체 인구에서 질병을 가지고 있는 비율)은 평균 4%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기준 0~17세 인구는 725만6000명으로 이중 4%에 해당하는 29만명 정도가 품행장애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가 여자보다 3~4배 정도 더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품행 장애의 동반 질환인 ADHD 환자 수는 작년 10만명을 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ADHD 환자 수는 2017년 5만3056명에서 2021년 10만2322명으로 5년새 93% 급증했다. 전체 환자 수의 70%가 만 5~19세 청소년이다. 연령별로 보면 만 5~9세 ADHD 환자 수가 58% 증가한 2만8123명, 만 10~14세는 44% 늘어난 2만7992명, 만 15~19세는 22% 증가한 1만5354명이다.

교육 현장에선 품행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상우(48) 씨는 “품행 장애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10년 전에는 학교에 한 명 정도였다면 이제는 한 학급에 한 명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기를 지나면서 정서적, 사회적 상호 작용이 부족해 더욱 악화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소리를 지르고 뺨을 때리는 학생이 있었다”며 “학부모에게 치료와 상담을 권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라고도 했다.

품행 장애 단계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지나가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학대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거나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이코패스 등 범죄자에게서 발견된다. 허정윤 삼성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은 “품행장애 치료 반응률은 다른 질병에 비해 낮다”며 “최대한 빨리 상담과 약물 복용을 동원해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모습들이 품행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우리나라가 ADHD 유병률에 비해 치료율이 낮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전체 ADHD 환자 중 50~60%, 영국과 호주도 30%가 치료를 받지만, 우리나라는 전체 ADHD 환자 중 15%만 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한 거부감과 오랜기간 약을 복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치료를 중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