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거주 중인 직장인 남성 서 모(28) 씨는 무에타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발생 이후로 자신도 어디서든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 씨는 “신림역 CCTV 영상을 우연히 접한 후 ‘나’도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라면서 “호신술을 배워 내 한 몸은 지킬 수 있어야 불안감이 해소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복판에서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후 ‘묻지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며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는 호신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모두 20~30대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기존에 호신술을 주로 배우던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학원에 등록 문의를 하고 호신용품을 구입하고 있다.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이력을 제공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이달 호신술 검색량은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당일인 21일부터 급증해 24일 같은 달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건 전날인 20일과 비교하면 5배 넘게 급증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무에타이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 모(38) 씨는 “최근 신림역 사건이 발생하고 학원에 문의하는 사람들이 15% 정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강남구에서 주짓수 학원을 운영하는 이 모(45) 씨는 “학원 등록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폭증까지는 아니지만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중”이라며 “특히 기존 회원들이 신림역 사건을 의식하고 더 배워야겠다고 운동을 분위기”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실전 태권도 호신술' 발표회./뉴스1

호신용품 수요도 많이 증가했다. 네이버 쇼핑몰 ‘트렌드 키워드’에 따르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20대부터 40대 남성의 키워드 검색 1위는 호신용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단봉과 전기충격기, 호신용 스프레이도 모두 10위 안으로 집계됐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림역 사건과 같이 큰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는 과한 추정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라며 “심리학에서는 가용성 편향이라고 불리는 데 최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인해 차량용 망치 판매율이 높아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호신술을 배우는 것이 흉기를 든 범인을 제압하기엔 힘들지만 도망갈 시간을 벌거나 급작스러운 상황에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김대곤 김포대 무도경호과 교수는 “성별을 불문하고 일단 (묻지마 범죄)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은 해야 한다”라며 “가해자를 100% 제압하면 좋겠지만 그게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한데 호신술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박찬대 호원대 스포츠무도학과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문제 상황에 노출됐을 때 몸이 굳어 도망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지진 대피 훈련을 하듯이 호신술을 통한 연습으로 예측되지 않은 상황에 빠르게 도망가거나 대응하는 등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