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1시 서울시 마포구의 한 무인 라면 매장은 20~30대로 보이는 젊은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매장 안에는 여러 종류의 봉지라면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종업원이 따로 없는 이 매장에선 손님들이 각자 자신이 먹을 라면을 고른 다음 가열이 가능한 특수 재질의 큰 종이 그릇에 콩나물과 치즈, 만두 등 무료 부재료(토핑)를 함께 넣고 직접 끓여 먹는다. 라면에다 무료로 제공되는 부재료까지 합친 가격은 고작 3500원. 일반 분식집 라면 한 그릇이 4000~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높다.

이곳 단골이라는 이모(23)씨는 “요즘 어딜 가나 한 끼를 먹으려면 8000원이 넘는데 여기선 반도 안 되는 가격에 토핑을 잔뜩 넣어 든든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며 “라면 한봉지 값만 생각하면 집에서 끓여 먹는 게 저렴하지만, 계란이나 파 등 부재료는 1인분씩 팔지 않아 대용량으로 사뒀다가 남으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밖에서 사 먹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고물가로 지갑 사정이 가벼워진 20~30대가 식대를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최근 이러한 무인 라면가게가 인기를 끌고 있다. 14일 라면 무인 판매기(키오스크)와 라면 조리기를 납품하는 앤케이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납품 매장이 지난해 10여곳에서 현재 90곳까지 최근 1년 사이 약 8배 가까이 늘었다. 무인 라면전문점 ‘월드면’을 운영하는 오닉스 관계자는 “2021년 무렵 처음 오픈했을 땐 체인점 문의가 많지 않았는데, 올해 2~3월부터 전국으로 체인점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어 현재 지점만 24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마포구 한 무인 라면가게에서 한 남성 고객이 식사를 하고 있다./소가윤 기자

무인가게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외식물가가 치솟으면서 직장인들이나 청년들이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백화점, 전통시장, 편의점 등 전국 단위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 일반공산품, 농축수산물 등 생필품 156개 품목, 441개 상품을 매주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4월 기준 서울 외식 8개 메뉴(김밥·칼국수·자장면·삼계탕·삼겹살·김치찌개 백반·비빔밥·냉면)의 평균 가격은 1만414원으로 작년 3월 대비 9.7%(918원) 올랐다.

외식 물가 뿐아니라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데 드는 돈도 오름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1% 오른 124.04로 나타났다. 124.04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진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대다. 채소(6.9%), 기타농산물(6.9%), 수산물(6.1%) 등도 전년 대비 높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어 라면에 넣어 먹는 파, 고추, 계란 등의 소매가도 예년보다 비싸졌다.

무인 라면가게에서 식사 중이던 직장인 강모(27)씨는 “근처 분식집의 라면과 비교하면 500~1000원 저렴한 가격에다 토핑을 맘껏 넣을 수 있고 아무때나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면서 “편의점에서 사면 웬만한 라면이 한 봉에 1300원이 넘어가고, 마트에서 4개 들이를 사도 5000원 돈이 넘으니 집에서 끓여먹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이런 ‘짠소비’가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실질 임금이 따라잡지 못하는 점도 한몫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89만7000원으로 작년 동월 대비 1.6%(6만원) 늘었으나 물가수준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2.6% 줄어든 352만5000원에 그쳤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에 경제적 수입은 늘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최대한 아끼면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짠소비와 함께 한편에선 명품 가방·의류·향수 소비가 급증하고 20만원짜리 스시 오마카세(주방장에게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맡기는 요리)와 10만원짜리 망고빙수 등 고가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이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경험을 중시하니 한정된 수입 내에서 소비 패턴도 양극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