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민의힘에서 발의됐다. 노동계의 오랜 요구 사항을 담은 법안이다. 그런데 정작 민주노총은 이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을 제정하려고 시도하면 기업이 반대하는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간사인 김형동 의원은 지난달 31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김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민노총은 김 의원의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민노총은 지난 5일 논평에서 “여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체계 개악, 즉 ‘직무·성과급제 도입 및 확대’ 등과 연동되어 상위의 임금을 깎아 전체 임금을 ‘하향 평준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하나로 직무급제·성과급제를 도입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직무급제는 직무의 난이도나 가치에 따라 임금을 달리 책정하는 체계이고, 성과급제는 작업 성과나 능률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다. 개편 대상이 된 이른바 ‘호봉제(연공급제)’는 근무한 기간에 비례해 임금이 매년 올라가는 체계다.

정부가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한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는 이중구조가 형성된 원인이 호봉제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연공급제 때문에 한국에서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의 2.87배에 달한다. 유렵연합(EU) 15개국 평균은 1.65배이고, 연공급제가 널리 퍼져 있는 일본도 2.27배로 한국보다 낮다.

국제 기구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때 급여가 15.1%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5.9%이고, 일본도 11%에 그친다. OECD는 “(연공급제가) 임금과 생산성 격차를 발생시킨다”며 “연공보다 능력, 역량, 수행하는 직무에 대한 수요에 기반한 임금 결정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모든 경제 주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연공급제는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임금체계는 주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에서 활용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장의 61%가 임금체계조차 없다. 대기업이 정규직 근로자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만남의광장 앞 도로에서 열린 금속노조 경남지부 경남대회. /연합뉴스

현대차는 10년 동안 생산직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가 올해 3월 모처럼 채용에 나섰다. 현대차 평균 연봉은 2021년 기준 9600만원 정도다. ‘평균 연봉 1억원, 정년 보장’이라는 조건 때문에 ‘킹산직(생산직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는 민노총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노조이기도 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면 하청업체 근로자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인 처우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질 것을 우려하는 셈이다.

반대로 경영계는 정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에 긍정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2개사에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79.5%는 근로시간 유연화·임금체계 개편 중심의 노동개혁이 완수되면 기업 경영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는 45.4%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구현’을 꼽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기업이 찬성하고 노동계가 반대하는 한국과 달리 해외는 기업이 반대하고 있다. 호주는 노동당 소속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취임한 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에 착수했다. 그러자 호주 상공회의소와 소상공인협의회 등은 합동으로 “우리는 노동자들의 경험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는 근로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빼앗아 생산성을 떨어트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추진했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며 난색을 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의 2016년 조사에서 일본 주요 기업 143곳 중 66%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에 대해 ‘어렵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