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을 뜻하는 일본어로 체면을 의미)가 없냐?”란 대사로 유명한 한국 영화 베테랑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재벌 3세가 연루된 사망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과묵하고 성실한 신출내기와 발차기와 위장이 특기인 여형사, 불도저 같은 성격의 중참 형사가 구름 위 존재인 재벌가 자제를 붙잡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어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범죄수사를 포함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인 우리 주변의 서도철(황정민 役)과 봉윤주(장윤주)를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4월 19일 수요일 오후 2시 30분, 조용하던 서울 숭례문 일대에 노동가요가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수준의 높은 데시벨로 울려 퍼졌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도로 한가운데 설치한 10여개의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였다. 아스팔트 도로가 떨리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얼굴을 찌푸린 채 귀를 막았다.

소음이 점점 더 커지던 찰나, 집회 현장 인근에 있던 3.5톤(t) 트럭에 실린 대형 전광판에 빨간색 경고창이 나타났다. 법적 소음 기준(소음 평균값 65데시벨, 최고소음도 85데시벨)을 어겼다는 의미다. 이 트럭은 경찰이 새롭게 투입한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이다. 무선으로 연결된 소음 측정 장비가 집회·시위 현장의 소음을 측정하면, 무선 송출 장비를 통해 소음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대형 전광판에 노출된다.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도심 집회에 경찰의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이 나와 현장의 소음을 측정하고 소음 정도를 알리고 있다. /김태호 기자

그저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뿐이지만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집회 주최 측은 소음 기준이 넘은 것을 인지하고 잠시 스피커를 껐다. 그동안 경찰은 집회·시위 소음이 기준치를 넘으면 ‘소음 유지 명령’을 내리거나 확성기 등 사용 중지 명령, 확성기 일시보관 조치를 취했으나 강제력이 없어 관행적 조치에 불과하고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을 도입하면 많은 주최 참가자들에게 현재 소음 공해 수준을 알리고 자정을 촉구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찰은 기대한다.

이 소음 측정 차량을 도입한 사람은 화영웅(44) 서울경찰청 경비안전계 경위다. 그는 차량에 필요한 소음 측정 데이터 무선 송출 장비도 직접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장비는 소음 측정기에서 재는 소음 정도를 무선 전파로 변환해 송출하고 다시 수신기에서 해당 데이터를 숫자로 변환해 화면에 실시간으로 띄우는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31일 화영웅(44) 서울경찰청 경비안전계 경위가 자신이 개발한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 앞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 방송반 고등학생에서 경찰 소음 측정 전문가로

화 경위는 경찰 조직 내 소음 측정 전문가로 불린다. 특채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전문성을 인정 받아 줄곧 소음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독특한 케이스다. 그는 고등학생 때 방송반 생활을 하며 음향장비에 관심을 가졌고 20대 초반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행사 대행업체에서 음향장비 설치와 운용을 담당했다.

2013년 입직한 그는 조직 내 집회·시위 소음관리 태스크포스(TF)에 합류하게 됐다. 이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 정한 소음 기준치를 넘었을 때 확성기와 음향장비 등을 경찰이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조치를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기동대원을 상대로 소음 제어 요령 강의도 했다.

현재는 서울경찰청 경비안전계에서 일하며 집회·시위 현장에서 소음 측정 차량을 운용하고 일선 경찰서의 소음 측정을 지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소음 측정 차량을 도입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집회 주최 측이 자신들이 내는 소음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큰 전광판에 눈에 잘 띄게 소음 정도와 기준을 안내하면 집회 참가자들이 자정작용을 하듯이 소음을 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의 일선 경찰서들에서 소음 측정 차량을 도입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고 한다. 그는 “법정 소음기준을 넘기면 전광판이 빨갛게 변해 알리다 보니 눈에 잘 띈다”며 “현장의 경찰과 일반 시민들은 물론 집회 주최 측도 소음 기준이 넘는 사실을 바로 알게 돼 조심하려는 노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년까지 소음 측정 차량 2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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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웅(44) 서울경찰청 경비안전계 경위가 자신이 만든 무선 소음 측정 데이터 송출 장비를 시연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화 경위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성숙한 문화가 자리잡기 위해 현행 집회·시위 소음 관리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집시법에서 정한 소음을 넘기면 경찰은 집회 주최자에게 유지명령서 등을 전달하는데 집회 현장에 막상 주최자가 없는 경우가 잦다”며 “꼭 주최자가 아니더라도 현장 책임자에게 유지명령서를 전달하거나 집회 참가자들에게 전광판 등으로 공지하는 방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시법의 소음 규정을 어겨도 집회 주최자가 벌금 50만원 이하를 내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대규모 집회의 경우 무대 설치에만 1000만원 이상이 들기도 하기에 집회 주최 측은 벌금 50만원은 큰 액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벌금을 높이고 주최자 뿐 아니라 경찰의 제지를 따르지 않는 주요 참가자들도 처벌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