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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임원이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거나 노조비를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채 직(職)을 유지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자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이래선 안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일부 노조원들은 현행법상 규제 공백을 개선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고, 관련 법이 발의됐다.

◇ 잇따른 노조 임원 부정행위에도 법적 해임 근거는 없어

1일 노동계에 따르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공동강요)·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이승조 한국노총 산하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연합노련) 위원장은 현재 구속 상태로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2020년 10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건설 현장에서 19개 업체를 상대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9412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올해 2월 28일 구속돼 3월 27일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되고 이 위원장이 구속된 상태지만 이 위원장은 현재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위원장 구속 직후인 올해 3월 초 한국노총은 이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 위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합노련은 이 위원장의 위원장 직무 대행을 선임한 상태다. 연합노련 관계자는 “이 위원장에 대한 형이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며 위원장이 바뀌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위법 혐의로 구속됐으나 노조 주요직을 지킨 사례는 이 위원장뿐만이 아니다. 진병준 전 한국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조(건산노조) 위원장은 7억원대 노조비를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됐다. 진 전 위원장도 임기 도중 구속돼 재판에 올랐지만 한국노총 측과 건산노조 조합원들의 사퇴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지난해 11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 같은 해 12월 법원은 구속 중인 진 전 위원장에게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부정행위 위원장들의 ‘자리 알박기’가 가능한 이유는 현재 법상으론 노조 위원장 등 임원들이 노조비를 횡령해도 직무를 정지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자체 의결기구에서 임원의 해임안을 결정해야 하는데 노동계 일각에선 위원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임원이 구속되거나 기소된 이후에도 집행부가 징계를 미룬다는 설명이다. 한 한국노총 소식통은 “노조는 의결기구가 대표자에게 장악되면 조합원들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노조법 개정안 심사 중… “노조 위해서도 필요해”

노동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진 전 위원장 사태 이후 새로 집행부를 꾸린 건산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국회에 “노조도 기업처럼 임원의 해임 또는 직무정지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의견을 보냈다.

이에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 등 22명 의원은 지난 3월 7일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노조 의결기구가 법을 어긴 노조 임원의 해임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전체 조합원 20%가 동의하면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이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있다.

정 의원은 “현재로선 노조의 임원이 조합비를 횡령하거나 배임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임원을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노조 활동을 위해서라도 부정행위를 저지른 노조 임원은 노조의 청구와 법원의 인용을 통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육길수 건산노조 위원장은 “잇따른 노동계의 도덕적 해이는 제도 미비 때문에 생긴다”며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조 문화가 더욱더 민주적이고 투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