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A씨는 헝가리 의대 출신이다. 2012년 입학한 뒤 작년 졸업해 국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해외에서 졸업했는데 해외 내신 성적을 인정해 주는 학교가 (한국에) 없어 어디에도 지원할 수 없었다”며 “한국 의대 입시 시스템에도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헝가리 의대 1~2학년 때는 이론, 3~6학년 때는 이론과 임상 수업을 한다”며 “처음에는 적응하는 것과 공부하는 게 힘들었지만, 필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과정으로 학업을 해냈기 때문에 환자 앞에서 부끄럽지 않다”며 “(국내 의대 학생들과)똑같이 공부 열심히 했고, 똑같이 국가고시를 보고 통과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의 헝가리 의대행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헝가리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국가고시를 치러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뒤 국내 대학병원 등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꼼수로 의사가 된 ‘헝즈몽(헝가리·우즈베키스탄·몽골) 의사’라고 비아냥 거리지만, 이들은 “똑같이 국가고시를 통과한 의사”라고 했다.

◇ 헝가리 의대 한국인 600여명... 韓 국시 자격 주는 학교는 20% 달해

28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헝가리 의학·치학·약학·수의학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은 6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한국인 학생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멜바이스(Semmelweis) 의대의 경우 2020년 기준 재학생 1317명 중 약 20%(253명)가 한국인이다.

제멜바이스 의대는 2014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국시원) 인증심사에 통과했다. 국시원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제멜바이스 의대를 졸업한 학생이 국내에서 의사 국가고시 시험을 볼 수 있고, 합격할 경우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제멜바이스 의대가 국시원 인증을 받은 2014년 7명에 불과했던 한국인 입학생은 이듬해 21명으로 3배 뛰었다. 2016년에는 31명, 2018년에는 49명, 2020년에는 80명으로 증가 추세다.

국시원 인증을 받은 또 다른 헝가리 의대인 세게드(Szeged) 의대 올해 재학생 916명 중 한국인 학생은 134명이다. 페치(Pecs) 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도 94명에 달한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한 헝가리 의대 출신은 총 77명인데, 이 중 81%인 62명이 합격했다. 같은 기간 헝가리를 제외한 외국 의대 출신이 국가고시에 합격한 비율(68%)보다 높았다.

헝가리 국립대 제멜바이스(Semmelweis). 2020년 기준 이곳 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은 253명으로 의대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제멜바이스 홈페이지 캡처

◇ 헝가리 의대는 ‘절대평가’... 준비생 44%가 대학생, 고3도 16%

학생들이 헝가리 의대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능력검정시험과 달리 헝가리 의대는 절대평가로 학생을 선발한다. 필기시험은 문법영어·의학영어·생물·화학 등 4가지인데, 암기를 잘하면 고득점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나머지 구술시험은 교수와 생물·화학 관련 주제를 두고 인터뷰하는 형식 등으로 진행된다.

헝가리 의대 준비생들이 모이는 유학원 SM프리매드 센터의 김재성 원장은 “한국의 경우 수학·국어에서 실수하면 의대에 갈 수 없다”며 “헝가리 의대는 6개월 내외의 기간 생물·화학·영어 등을 열심히 암기하면 붙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헝가리 의대를 준비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이미 국내 대학에 진학했지만 의사에 도전하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김 원장은 “헝가리 의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중 44%는 대학생이고, 13%는 재수생, 고등학교 3학년은 16%”라며 “대학생 중 대다수가 서울대·연대·고대 학생들로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취업이 어렵다 보니 준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헝가리 의대 입학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졸업하기는 까다롭다. 3학년 때부터 현지 병원에서 숙식하며 직접 환자를 진찰한 내용과 관련 기록을 토대로 공부하는 임상수업이 진행되는데, 헝가리어 등 외국어로 의사소통해야 한다. 졸업생들은 외국어를 못해도 졸업할 수 있다는 편견은 사실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부량도 국내 의대 못지 않아 유급을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유급 없이 곧바로 졸업하는 한국인 학생은 100명 중 1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2번 유급한 학생은 퇴학 조치된다. 공부를 못해도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부푼 꿈만 가지고 입학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 국내 대학 출신 의사들은 비판도... “헝가리 의대 출신, 약력에 적겠나”

다만 국내 의료계에는 이들을 두고 ‘헝즈몽 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 의대 입시보다 상대적으로 입학이 쉬운 헝가리 의대를 졸업했는데, 똑같은 의사 면허증이 주어지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정시로 수도권의 한 의대에 입학한 B씨는 “헝가리 의대 입학이 굉장히 쉬운 것으로 알고 있어 의사들 사이에서는 편법으로 의사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다”며 “수능 3~4등급인데 의사가 되고 싶어 헝가리 의대에 가는 경우가 많지 않냐. 수능 보고 들어간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고시를 통과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긴 하다”면서도 “개원했을 때 헝가리 의대 나온 걸 약력에 적을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