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6시 37분. 문이 굳게 닫힌 서울 구로구 우리아이들병원 건물 앞에 다양한 나잇대의 남녀 10여명이 초조한 얼굴로 줄을 서 있었다. 2013년 개원한 구로아이들병원은 서울 서남권역에 최초로 설립된 어린이 전문 병원이다.

10여분이 지나 건물 입구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이들은 2층 진료실 앞 계단을 한 칸씩 차지하고 앉았다.오전 8시 10분이 되니 대기인원은 58명까지 늘었다. 아이를 안고 온 여성들이 계단에 미리 줄을 서 있던 남편과 교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오전 9시 진료 시작을 앞두고 8시 40분 시작되는 대기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인 송모(47)씨는 4살 자녀의 진료를 위해 이날 경기도 안양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다. 송씨는 “구로에 살다가 이사갔는데 이곳 원장님이 실력이 좋으셔서 진료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운전해 왔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새벽 6시부터 서울시 구로구 우리아이들병원에 부모들이 자녀 진료를 위해 '오픈런'을 하고 있다./소가윤 기자

이날 오전 6시 30분. 서울시 성북구 우리아이들병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대기를 하는 사람들은 헤드폰을 끼거나 태블릿 PC로 영화를 보는 등 각자 할 일을 하며 대기 시간을 버텼다. 아예 캠핑의자를 챙겨와 앉아 있는 사람들도 흔했다. 앞줄을 차지한 사람들은 9시 접수를 위해 새벽 3~4시에 병원을 찾았다.

6살 자녀를 둔 A씨는 아예 직장에 연차를 내고 소아과를 찾았다. A씨는 “소아과가 없고, 응급실에 가도 소아과 선생님이 없으면 아예 진료를 못본다. 그래서 다들 개인 소아과 병원을 오는데 의사 수가 너무 적어서 오픈런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애 엄마도 아이에게 감기에 옮아서 내가 연차를 내서 오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소아과 수 자체가 줄어드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 완화로 대면·야외활동이 늘어나고 환절기 호흡기 질병과 독감 등 전염성 질병이 확산하며 소아과 태부족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 소아과 수 5년째 제자리...전공의 기피 심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전국 소아청소년과 수는 2017년 4분기 2229개에서 작년 4분기 2135개로 소폭 줄었다. 그마저도 60%에 달하는 1265개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있다.

세 자릿수를 기록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3년 전 두 자릿수로 줄었고 올해는 33명에 불과하다. 내년엔 한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올해 소아청소년과 모집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38개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0명이었다.

소아과 기피의 원인은 저출산 고령화로 진료대상인 아이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다른 과보다 낮은 의료수가와 소아 진료의 어려움 등이 꼽힌다. 어린이를 돌보는 소아과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고 진찰료로만 수익을 낸다.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 간 1만7000원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의원급 병원의 소아과 의사 연평균 임금은 1억6300만원으로 조사에 포함된 22개 과목 가운데 19번째였다. 2021년 의원급 총진료비는 18조77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 증가했으나,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5134억원으로 전년 대비 1.58% 감소했다. 2011년(6822억원)에 비해 24.74%나 줄었다.

지난 3월 말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운영난을 호소하며 집단 폐과 후 미용이나 비만 진료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다음달 11일부터 개설하는 진료과목 전환교육 신청엔 560명 이상이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전체 소아과 의사의 10%에 달한다.

한 아동병원에 종사하는 의료진은 “소아과 의사들은 보람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현실은 의료진에 최소한의 인권이나 대가가 보장이 되지 않으니 점차 떠날 수밖에 없다”면서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소아과 의사를 지원하겠는가”라고 말했다.

◇ “의료수가 인상 등 경제적 보상 강화해야 소아과 기피 해결”

소아 진료 공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31일 중증, 응급, 분만과 소아까지 필수 의료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소아 입원 진료 수가 개선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 사후 보상 등이다.

그러나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의사들은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학과의사회 회장은 “소아과의 인턴이나 레지던트 등 전공의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며 ”일본도 소아청소년과전문의들이 지원을 안하는 사태를 겪었는데 아예 인턴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