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서울 마포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김모(40)씨는 ‘테이블 오더’ 설치를 고민하고 있다. 테이블 오더는 태블릿PC에 카드 단말기가 부착된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의 한 종류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 식사를 마친 뒤 계산을 안 하고 몰래 빠져나가는 이른바 ‘먹튀’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매출도 매출이지만 ‘먹튀’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류애가 사라진다”며 “선결제 이후 음식이 제공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검토하고 있다. 설치 비용과 시기 등을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드단말기가 부착된 ‘테이블 오더’를 설치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먹튀’를 차단할 뿐 아니라 직원이 주문받지 않아도 돼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일행이 각자 결제하는 ‘더치페이’ 기능은 물론 외국어 서비스도 제공해 이점도 많다.

◇ ‘먹튀족’에 테이블 오더로 대응…현장선 “장점 많다”

1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전취식·승차 신고 건수는 9만4752건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강타한 2021년(6만6217건)에 비해 40%가량 늘었다. 2016년부터 10만건 상회하던 무전취식·승차 신고 건수는 2019년 11만6496건을 기록한 뒤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무전취식·승차로 고통을 겪는 자영업자들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테이블 오더’ 설치를 먹튀 예방책으로 꺼내 들었다. 테이블 오더는 대체로 3년 약정 계약을 체결하고 한 대당 부가세를 포함해 매월 19000원가량을 낸다. 여기에 거치대, 카드단말기 등 비용을 따로 지급한다. 일부 업체는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자사 포스(POS) 프로그램 설치를 조건으로 내건다. 테이블 오더 20대를 운영하려면 매월 약 40만원의 지출이 발생한다. 일시불로 기기와 각종 장비를 구입할 수 있지만 초기 부담이 큰 탓에 3년 약정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20대를 일시불로 구매하면 1000만원이 넘는다.

최근 테이블 오더를 설치했다는 강남구의 한 식당 대표는 “주변 사장님이 효과가 좋다고 해서 상담을 받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손님 입장에서는 술을 주문할 때 매번 결제해야 해 불편할 수 있지만 ‘먹튀’를 봉쇄할 방법으로 보인다”며 “전자 메뉴판 기능도 제공돼 직원이 매번 메뉴판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후불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주문량이 늘어 상담 후 설치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테이블 오더는 카드 단말기를 중국에서 수입해 태블릿PC에 부착하는 형태로 출시하는데 주문량이 많아지면서 준비해 둔 카드 단말기가 동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량을 예측해서 각종 기기를 준비하는데 이번 달은 재고가 없어서 빨라야 다음 달에 설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최저임금 ‘껑충’…'키오스크’로 인건비 절감

키오스크 등 무인 선결제 시스템은 2018년 최저임금 상승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6.3% 증가해 7530원으로 결정됐다. 2019년에는 10.8% 올라 8350원으로 앞자리가 바뀌었다. 많은 자영업자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며 채용을 꺼리기 시작했다. 결국 직원 대신 키오스크로 주문 받고 자신은 주방에서 음식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절감했다.

코로나19는 키오스크 시대를 활짝 열었다. 비대면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매장 직원을 채용할 이유가 줄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매장을 찾는 발걸음이 멎어 들자 키오스크로 직원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기에는 키오스크가 직원과 손님의 접점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신한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2015년 2130억원에서 올해 3960억 수준으로 매년 성장하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 한 식당에 테이블 오더가 설치돼 있다./홍인석 기자

자영업자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관련 업계도 발전하고 있지만 불편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글자 크기가 작고 업종이나 브랜드마다 키오스크 주문 순서 등 조작법이 달라 장애인과 고령자들 중심으로 주문이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기능 표준화는 물론 현장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에 기능‧설계 표준화를 건의했고, 고령자‧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키오스크 접근성 개선도 권고했다”며 “고령 소비자를 대상으로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