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회복이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 극장가는 여전히 관객 수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대작들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의 인기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소비자들은 급격히 오른 영화관람료를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극장 운영사가 코로나19 기간 티켓값을 무려 세 차례나 올려 성인 2D를 주중에 1만4000원에 봐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모든 콘텐츠를 한달동안 고화질로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스탠다드 요금제(월 1만3000원)보다 비싼 값은 받아들이기 힘들단 지적이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가격 인상을 통해 매출 증대를 꾀했던 기업들이 사뭇 달라진 소비자 반응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가격 인상을 바라보는 소비자 정서가 부정적이다 못해 ‘험악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국내 극장 매출, 코로나 이전의 50% 불과... “티켓값 너무 비싸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1~2월 극장 매출액은 1931억원으로 전년 대비 123.1% 증가했으나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43.4% 적다. 정부가 작년 4월부터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취식하게 하는 등 방역 규제를 풀어준 점, 미국 극장가는 올해 매출이 2019년의 70~80% 수준을 회복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회복이 더디다.

직장인 오정민(32)씨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친구와 한달에 1번 정도는 꼭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데이트 패턴이었다”며 “마블 영화 같은 대작이 아니어도 극장에 걸려있으면 호기심에 가볍게 보곤 했지만 코로나로 못간 사이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TDI가 2~26일 10~6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62.9%가 영화관 이용 최대 단점으로 비싼 영화 관람료를 꼽았다.

주중 성인 2D 영화 티켓값은 2018년 1만원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며 1만4000원으로 껑충 뛰었다. 국내 극장 운영 3사인 CJ CGV(079160)·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영업적자를 견디다 못해 3년 간 가격을 세 차례나 올렸기 때문이다.

티켓값은 주말엔 1만5000원이고 특별한 좌석이나 스크린을 선택하면 2만원 가까운 가격이 된다. 팝콘과 콜라 등 먹을거리까지 구매하면 2~3만원. 2명이 본다면 4~6만원꼴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문화생활이라기 하기엔 제법 비싸졌다.

극장 운영사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걸까. 이들은 영업적자를 버티다 못해 어쩔 수 없이 결단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한편에선 ‘과거엔 그래도 소비자가 찾아왔고 매출이 늘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전 CJ CGV가 관람료를 인상한 2013년, 2016년, 2018년에는 극장을 찾는 관람객 수는 늘었고 매출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 택시요금 26% 올렸는데 매출 1% 늘어...배달업계는 ‘배달료 안티 이탈’에 신음

택시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일부터 중형택시 기본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고 기본요금이 적용되는 거리를 2㎞에서 1.6㎞로 축소, 추가 요금 기준을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에서 바꿨다. 운송원가에 비해 요금이 낮다는 택시업계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본료가 인상된 2월 1~20일 법인택시 한대당 평균 매출은 20만6608원으로 인상 전인 작년 12~1월 평균보다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택시 1대당 실제 승객을 태워 이동한 거리는 196㎞에서 159㎞로 떨어졌다.

코로나19 기간 승승장구하던 배달업계도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배달료 안티’ 이탈이 겹치며 이용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입점업체가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배달료는 코로나 이전 1000~2000원 수준에서 최근 3000~4000원 수준이 일반화 됐다. 일부 점포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7000~8000원의 배달료를 매기기도 한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주요 배달 앱(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의 월간이용자수(MAU)는 2922만명을 기록했다. 2021년 3월 3195만명을 넘어선 배달 앱 이용자 수가 3000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받은 혜택이나 품질 대비 가격이 너무 크게 올랐다는 게 문제”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작년 세계 주요 23개국 만 18세 이상 성인 2만30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소비자 54%가 물가 상승의 원흉으로 ‘기업의 약탈적 가격 정책’을 꼽았다. 기업이 이윤을 증대하기 위해 영업비용보다 더 가파르게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급격히 확산되며 소비자 정서가 험악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 때문에 물가도 많이 올랐고 경기도 안 좋은데 가격을 확 올렸으니 당연히 반발이 생긴다”며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격 인상을 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혜택을 받는 것에 비해 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반발 심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은 그대로인데 지출해야 되는 돈만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런 식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가 저렴한 대체재를 찾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 산업 전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반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을 올렸을 땐 소비가 확 줄 수 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상화된다”며 “가격 조정이 너무 한꺼번에 이뤄졌다는 느낌을 주면 조정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