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는 등 갈수록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드는 가운데, 저출산 현상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기금 고갈 이후 청년층의 노인 부양 부담은 매우 커지게 만든다. 출산율이 반등하지 못하고 초저출산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2070년에는 근로자들이 소득의 42%를 노인들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험료로 내야 한다.

3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산율 2030년 0.96명으로 반등 성공해도 2093년엔 소득 30% 연금으로 내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推計)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재정추계전문위는 지난 1월 ‘기본 가정’에 기반한 시산(試算)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다양한 미래 상황을 고려해 총 8가지 시나리오별로 국민연금 재정을 계산해본 것이다.

1월 시산 결과 발표 후 통계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의 0.81명에 비해 0.03명 감소한 것으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더 떨어진 것이다. 혼인 건수가 감소한 영향 때문에 올해 합계출산율은 더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이 같은 초저출산이 계속되는 경우를 가정한 분석도 했다.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2명으로 떨어지고, 2030년에는 0.64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그 후 반등해 2040년 0.69명, 2050년부터는 0.98명 수준을 기록하는 경우 재정 변화를 전망한 것이다. 그 결과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하는 시점은 2055년으로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이 2030년 0.96명, 2040년 1.19명, 2050년 이후 1.21명 수준일 경우를 놓고 분석한 ‘기본 가정’과 고갈 시점이 같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정부는 계속 연금을 지급한다. 2055년부터는 국민연금에 가입한 청년과 중년, 장년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번 소득 중 일부를 보험료로 내고, 그 돈으로 노인들이 연금을 받는다. 연금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은 대부분 이 방식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기금이 소진된 후 연금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연금 가입자가 소득 중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 비율이 ‘부과방식비용률’이다.

초저출산이 지속될 경우 ‘기본 가정’에 비해 부과방식비용률이 크게 높아졌다. 기본 가정에서 부과방식비용률은 2060년 29.8%, 2070년 33.4%, 2093년에는 29.7%였다. 그러나 초저출산 시나리오에서는 2060년 34.3%, 2070년 42%, 2093년에는 42.1%로 추산됐다. 2070년에는 노인 부양을 위해 버는 돈의 42%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재정추계전문위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61명 수준으로 반등하는 경우를 가정한 분석도 했다. 출산율과 관련한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이 경우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으로 같았고, 2093년의 부과방식비용률은 25.3%로 추산됐다.

국민연금 재정은 기금 투자 수익률에도 영향을 받는다. 기금을 투자해 더 많은 수익을 얻으면 고갈 시점이 늦춰진다. 재정추계전문위에 따르면 기금투자수익률이 기본 가정(연 4.5%)보다 0.5%포인트 높아지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57년으로 2년 늦춰진다. 반대로 0.5%포인트 낮아지면 1년 빠른 2054년에 기금이 소진된다. 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질 경우 소진 시점은 5년 지연되며, 보험료율을 2%포인트 인상한 것과 같은 효과다.

전병목 재정추계전문위원장은 “출산율을 높여 인구구조를 개선하고, 경제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장기적 재정 안정화에 중요한 요소”라며 “기금의 역할 강화 역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기금투자수익률을 높이면 보험료 인상 부담이 완화되는 만큼, 수익률 제고를 위한 방안을 전문가 토론회를 거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 공동위원장, 김연명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연합뉴스

◇10월까지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 마련해 국회 제출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제5차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마련해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안에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개시 연령, 가입상한연령 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담기게 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 29일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가입상한연령, 수급개시연령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만 59세까지만 가입 의무가 있어서, 60세부터는 직장에 다니는 등 소득이 있어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민간자문위는 “가입상한연령은 국민연금 제도 합리화 차원에서 우선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올해 63세이고, 2033년까지 점진적으로 65세로 상향되고 있다. 민간자문위는 수급개시 연령을 65세보다 더 높이는 방안에 대해 “고령화 진전에 따른 연금재정 부담 완화 차원에서 장기적 필요성은 인정된다”며 “현재도 수급개시연령 상향 조정이 진행되는 만큼 속도 조절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어 “정년 연장, 고령자 근로 여건 개선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영국은 2044년부터는 68세가 되어야 연금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