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0일 낮 12시 25분. 삼성그룹의 백업데이터를 보관하는 경기도 과천시 삼성SDS 데이터센터에서 불꽃이 시작됐다. 불은 사무실과 외벽 등 2700㎡(816평)를 태우고 7시간 만에 진압됐다. 이날 화재로 당시 입주사인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의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 삼성SDS 측은 입주사에 대한 손실보전비용을 포함해 손실금액이 945억7000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9년이 흐른 지난 7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삼성SDS가 삼성중공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사 재하도급 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들 업체는 삼성SDS에 283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결론이 나기까지 무려 9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화재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히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작년 10월 15일 전국민이 겪었던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발단인 경기도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역시 SK C&C와 입주사인 카카오 간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경우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판교캠퍼스에서 불이나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는 모습. 이날 오후 카카오 등 데이터 관리 시설이 입주해있는 이 건물 지하에서 불이나면서 카카오톡, 카카오택시 등 일부서비스에 장애가 빚어지고 있다./뉴스1

◇ 9년 만에 삼성SDS 일부 승소로 마무리… 2심에서 뒤집혀

2014년 삼성SDS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입주사인 삼성카드는 일주일 간 온라인 결제서비스 장애를 겪었다. 먼저 고객 보상을 끝낸 삼성카드는 삼성SDS에 구상권을 청구했고, 약 200억원 상당을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삼성SDS는 당시 건설과 건물 관리를 했던 에스윈, 삼성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성테크 등 4개사를 상대로 총 638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연도(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 과열이나 배기가스 누출 등 건물 하자로 인한 화재이므로 건물 손실과 영업 중지 등 전체 손해액 1069억여원에서 보험금을 제외한 금액을 분담하자는 취지다.

1심은 삼성SDS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의 과열이나 배기가스 누출 등의 하자가 화재 발생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당 통로 제작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1심 재판부는 봤다.

그런데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에서 발전기 관련 조립이나 용접, 건물 마감 공사 불량 등으로 ‘틈새 하자’가 생겼을 수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2012년 시 운전 당시 연도에서 불이 났고, 이 때문에 부속건물 옥상 방수시트 콜타르가 녹았지만 보수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발전기 연도에 닿은 부속건물 옥상에 불연재가 사용되지 않은 점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삼성SDS가 증설공사 진행을 위해 ICT센터에 설치된 소화·경보 시설을 차단해 화재 발생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측면 등을 고려해 배상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대법원도 “연도관의 조립 또는 용접불량으로 인하여 연도관의 단열기능이 약화되고 고온 · 고압의 배기가스가 누출됨으로써 연도면 및 그 주변 공기가 고온으로 가열되었고, 이로 인하여 연도관에 근접하여 시공되었던 가연성 물질에 착화가 이루어져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고,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며 최종 판결을 내렸다.

재판이 끝나기까지 9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은 화재의 구체적인 원인을 따져 책임 소재를 가려 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모든 구상권 사건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1·2심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는 사건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는 것”이라면서 “화재의 원인과 피해 범위를 규명하는 것이 인과를 명확히 나누기 쉽지 않아서 장기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 카카오·SK C&C 책임공방도 장기화 가능성… 양측 귀책사유 뚜렷

지난해 발생한 카카오와 SK C&C 사태도 책임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SK C&C는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를 유발한 일차적 책임이 있고, 카카오는 긴급복구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양사 모두 귀책사유가 있다. 이 때문에 각 사업자가 발생시킨 피해의 범주를 명확하게 나누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역시 화재가 발생한 곳은 IDC였다. IDC는 서버, 네트워크 등 IT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장비를 한 건물에서 24시간 365일 운영·관리하는 곳이다. 전류 공급 중단은 필연적으로 입주사들의 피해를 불렀고, 화재로 입주사가 입은 피해 규모는 수천억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원 등이 정확한 화재 원인에 대해 조사를 진행중이다.

쟁점은 화재 사고의 책임이 있는 SK C&C가 어느 범위까지 손해배상을 해야 되느냐의 여부다. 통상 데이터센터 가동 중단의 경우 양사가 체결한 ‘서비스수준협약(SLA)’에 따라 보상이 이뤄진다. 하지만 가동 중단에 따른 매출 손실과 소비자 피해보상액 등 배상 범위를 두고 법정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는 소비자 보상을 마치는대로 구상권 논의를 청구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양사의 SLA가 어느 수준까지 세세하게 상황별 책임 소재를 나누겠다고 정해놨는지가 관건이다. 계약시 맺은 SLA에 근거해서 책임을 나누기 때문이다. 복구 및 배상 등 모든 판단의 기준이다. 얼마나 꼼꼼하게 체결했느냐가 변수인데 카카오라면 매우 세세하게 상황을 정했겠지만, 저번 사태처럼 전체 전원이 꺼지는 걸 대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유강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구상이라는 건 결국 남의 피해를 다시 갚아준다는 말이다. 원 책임자더러 다시 물어내라는 것인데 구상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는지는 카카오와 SK C&C 양사 간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들이 서로 어느 정도까지 책임졌는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