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건설노조 법률국장 A씨는 수도권 아파트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건설사를 상대로 “우리 펌프카를 사용하지 않으면 장기간 집회를 개최하고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했다. 공사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걱정한 건설사는 A씨에게 전임비·복지비 명목으로 1100만원을 건넸다.

경찰 수사 결과 A씨는 인천 지역 폭력조직 J파의 조직원으로 나타났다. 그는 직접 노조를 만든 뒤 노조 법률국장을 자처해 협박을 일삼으며 금품을 뜯어냈다. 2인 이상이 고용노동부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충북지역 폭력조직 P파와 S파 조직원들도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공갈 목적의 허위 노조 지부를 설립한 뒤 충북 일대 8개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노조원을 풀어 현장 입구에서 매일 집회를 하겠다”고 협박, 월례비 명목으로 8100만원을 뜯어냈다.

뉴스1

경찰이 최근 3개월 동안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건설현장에는 조폭 등이 개입된 갈취구조가 고착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물론 환경단체·장애인단체도 외국인 불법고용 등 문제를 약점 잡아 건설사의 금품을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 7일까지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시행해 581건·2863명을 검거, 이 중 102명을 송치(구속 29명)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전임비·월례비 등 금품갈취가 2153명(75.2%)으로 가장 많았다. 건설현장 출입방해·작업거부 등 업무방해는 302명(10.5%), 소속 단체원 채용 및 장비사용 강요는 284명(9.9%), 건설현장 주변 불법 집회·시위는 17명으로 집계됐다.

구속된 29명 중에서도 금품갈취가 21명으로 최다였다. 그밖에 채용·장비사용 강요는 4명, 업무방해는 3명, 폭행·협박 등 폭력행위는 1명이었다. 검거된 인원 중 77%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나머지 23%는 군소노조나 환경단체, 지역 협의단체 등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건설현장 폭력행위가 1회성 단속으로 해결될 수 없는 중대한 사회 문제라고 보고 불법행위가 근절될 때까지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번 특별단속은 오는 6월 25일까지 진행된다.

경찰 관계자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조직적인 지시와 공모가 있었는지 여부에 수사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전국 주요사건의 자금흐름을 분석해 상위 단체의 조직적 지시와 조폭 개입 여부 등을 보다 철저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건설현장에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권단체가 개입해 민원을 제기하고 집회를 열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B씨 등 2명은 환경단체 산하에 살수차 조합을 설립한 뒤 건설사를 상대로 자신들의 살수차를 사용하라고 강요했다. 건설사가 이를 거부하자 4년 동안 220회에 달하는 환경민원을 제기했다. 결국 건설사는 살수차 사용료로 4억원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한 지역의 노조는 수도권 일대 16개 건설현장에서 조합원 700명을 채용하라고 강요하며 현장 작업자의 공구를 빼앗고, 불법으로 고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건설사가 끝까지 노조원을 채용하지 않자, 노조는 “단협비라도 찍어달라”며 총 1억1000만원을 받아냈다.

또 다른 노조는 부산·울산·경남 일대 22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설사를 상대로 총 1억8600만원을 갈취했다. 이들은 “노조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크레인을 동원해 높은 곳에서 건설현장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문제삼겠다며 협박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폭력행위를 반드시 근절해야 할 적폐”라며 “불법과 무질서는 경찰이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범죄피해자를 적극 보호하고, 보복범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엄단하겠다”며 “일선 수사관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특진인원을 대폭 확대하여 추진력을 확보하고, 국토부‧검찰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경찰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