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미흡한 주취자 보호조치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선 지구대·파출소 경찰들은 주취자 보호가 오롯이 야간 근무 경찰에게 맡겨져 있다며 주취자 관리에 힘을 쏟느라 다른 치안 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라고 말한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주취자 보호가 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취자 상태를 분류해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과 제도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오후 술에 취한 시민을 놔둔 채 철수했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경찰서 휘경파출소를 방문해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최근 잇따른 경찰의 미흡한 주취자 보호조치

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술에 취한 행인을 집에 데려다주다 행인이 집 앞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에 한파 경보가 내린 날에 주취자를 야외에 방치한 탓이다. 현재 두 경찰관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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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엔 서울 휘경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이 주취자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주취자를 도로에 방치하다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두 경찰관에 대한 내부 감찰을 진행 중이다.

잇단 경찰의 미흡한 조치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사고로 사망한 고인의) 가족분들과 국민들께 경찰청장으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윤 청장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경찰로서 이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현장의 경찰관들은 현행 제도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경찰관 직무직행법 4조는 “경찰이 술에 취한 사람을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 “주취자 관련 매뉴얼 無... 주취자 모두 보호하면 업무에 지장”

일선 경찰들은 주취자 보호와 관련한 내부 매뉴얼이 없는 점이 현장의 혼선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한다. 주취자의 상태는 천차만별인데 이를 경찰관 개개인이 판단해 알아서 처리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경기 지역의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주취자와 관련해서 문서화된 매뉴얼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불성이고 연고자와 연락도 되지 않으면 주취자를 지구대에 보호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술에 취한 사람을 지구대·파출소에 둔다면 출동과 업무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09년 발표한 ‘경찰의 주취자 보호·관리제도 개선방안’에서 ”요보호(要保護·보호를 요하는) 주취자를 선별하는 기준이나 보호조치 단계 등을 명시한 상세한 업무 매뉴얼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아서 초동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찰관이 업무 수행상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 경찰은 전국 154개 경찰서에 ‘주취자 안정실’을 설치하고 훈령에 주취자 보호대상과 보호절차를 명시했다. 그러나 훈령은 법적인 강제성이 없고 술에 취한 시민을 경찰서에 가둔다며 인권 침해 논란이 빚어졌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서에서 야간에 주취자들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2010년 주취자 안정실 운영은 중단됐다.

경찰은 지난 2011년부터 술에 취한 시민을 병원으로 데려가 보호할 수 있도록 ‘주취자응급의료센터’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전국 17개 주취자응급의료센터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1.8명에 불과하다. 경찰 관계자는 “치료가 필요한 주취자를 주취자응급의료센터에 인계할 수는 있지만 경찰이 치료 필요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센터 의료진이 일방적으로 주취자 받기를 거부한다면 경찰에서 다시 보호조치를 하는 등 현장의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주취자 상태에 따른 세부적인 관리 지침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세분화된 주취자 관리 지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취자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주취자로 분류한 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경찰이 즉시 구금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난동을 부리지 않은 주취자도 ▲의식이 없거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주취자응급의료센터에 인계하고 ▲의식은 있으나 몸을 못 가눌 정도인 사람은 야외 방치가 아닌 귀가 확인을 경찰이 하거나 이웃집에 맡기는 책임이 필요하고 ▲의식이 똑바른 사람은 귀가조치를 하는 구분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교수는 경찰의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미아지구대 사건처럼 경찰이 문 앞에 주취자를 두고 간 것은 오늘날 시민이 바라는 경찰의 책무와 현재 경찰의 업무 처리 방식 눈높이가 맞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며 “경찰도 시대변화에 맞는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