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홀인원에 성공한 골프장 이용객의 축하 비용을 보장하는 일명 ‘홀인원 보험’을 악용한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험 가입자들은 축하 선물을 산 것처럼 허위 구매 영수증을 끊은 뒤, 해당 금액을 보험사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수령한다.

홀인원은 골프에서 티 샷을 한 공이 단번에 홀에 들어가는 것으로 아마추어에겐 흔치 않은 일이다. 통상 일반인이 홀인원을 할 확률은 1만200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희박하다. 때문에 홀인원에 성공한 사람이 함께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주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 같은 시장을 염두해 ‘홀인원 보험’을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이를 악용해 보험금만 타가는 사기 행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 가입자들은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상당의 보험료를 지불하면 홀인원 시 몇 백만원의 축하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일러스트=이은현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전범식 부장판사)은 지난달 7일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혐의로 60대 남성 이모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허위로 영수증을 발급 받아 보험사 두 곳에서 홀인원 보험금 400만원을 수령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2017년 2월 13일 한 보험사에서 보장액 200만원 상당의 홀인원 보험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약 3일 뒤 홀인원 보험을 한 개 더 가입한 이씨는, 같은 달 경기 용인시의 한 리조트 골프장에서 홀인원에 성공했다.

이씨는 보장액을 받기 위해 근처 아웃렛을 찾아 70만~189만원짜리 구매 영수증을 3차례에 걸쳐 발급 받았다. 해당 영수증들은 홀인원 기념증서 발급 및 축하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험사에 보내졌지만, 실제로는 결제가 취소된 영수증들이었다.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두 보험사는 이씨 명의 계좌로 다음달 각각 200만원씩 홀인원 보험금을 송금했다.

제주도 제주시 소재 골프장에서 홀인원에 성공한 B씨와 C씨 역시 이씨와 같은 방식으로 보험 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2021년 5월 12일 제주지법에서 각각 200만원, 7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B씨는 2017년 5월 2일 제주시 한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하고, 약 5일 뒤 근처 골프의류매장에서 170만원 상당의 기념품을 구입한 뒤 영수증 발급 직후 해당 결제 건을 취소했다. C씨 역시 2018년 3월 9일 제주시 소재 골프장에서 홀인원에 성공하고, 당일 근처 상점에서 265만원가량을 결제한 뒤 취소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200만원의 보장금을 수령했다.

이처럼 홀인원 보험사기가 빈번해지면서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은 홀인원 보험사기 혐의자에 대해 공조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금감원은 홀인원 횟수나 보험금 수령액이 과하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을 조사 대상자로 우선 선정한 뒤, 허위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의심점이 발견되는 혐의자들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통보하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홀인원 보험금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보이는 사기범 총 168명 적발했다.

전문가들은 홀인원 보험 사기를 상습적으로 저지르거나 보험사 측에 큰 손실을 입힌 경우 보험금 수령액 이상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골프 인구가 증가하면서 홀인원 보험이 인기를 끌고, 홀인원을 증빙하는 공식 절차가 없다 보니 관련 범죄도 늘고 있다”며 “홀인원 보험 사기를 여러 차례 저지를 경우 사기 횟수에 따라 벌금액 상한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벌금과는 별도로 보험사 측에서 민사 소송을 통해 가입자가 얻은 부당이익을 돌려받고, 손해배상까지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도 염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