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이모(35)씨는 당분간 단호박 치아바타 메뉴를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식자재 마트에서 단호박 가격이 3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씨는 “단호박 가격이 한 통에 만원 가까이 한다. 평소대로 팔면 손해인 상황”이라며 “가격이 안정화될 때까진 아예 메뉴에서 빼버리는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수입산 단호박 물량 부족으로 단호박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단호박은 늦가을·겨울철에는 국내 생산 물량이 부족해 남태평양 국가인 통가와 뉴칼레도니아에서 수입하는데, 폭우로 이들 국가의 단호박 작황이 부진해 수입물량도 씨가 말랐다. 단호박 원물을 쓰는 빵집이나 샐러드집 등 일부 자영업자들은 메뉴를 아예 빼거나 다른 구황작물로 대체하고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시민이 단호박을 집고 있다./뉴스1

1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 단호박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가의 경우 단호박 10kg이 6만409원(1월 4일 기준)에 거래됐다.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2만원대 중반에 거래됐지만 11월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현재는 5만원대 후반~6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소매가는 더 폭등했다. 한 지역마트 판매가를 보면 단호박 1망(4개입)이 11월 기준 1만2000원에서 1월 3만3000원으로 두 달만에 2만원이 넘게 올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근처 마트에서 단호박 한 통이 1만2000원에 팔리는 걸 봤다”면서 “기후위기 때문인지 식자재 물가가 너무 오르락 내리락이라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반찬이나 메뉴에서 단호박을 쓰는건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34)씨는 브런치 메뉴에서 ‘단호박 스프’를 빼고 ‘감자 스프’로 대체했다. 박씨는 “단호박 스프를 손님들이 좋아하긴 하는데 평소 레시피대로 만들면 원가가 너무 올라 마진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호박 가격이 천정부지인 것은 수입산 단호박 품귀 현상 때문이다. 단호박은 국내산이 6월 말에서 1월 중순까지 지속적으로 출하되는데 여름과 가을에 생산이 집중된다. 11월부터 1월 중순까지는 남태평양 국가인 통가와 뉴칼레도니아에서 수입해 보완하는 구조다. 이후 1월 말부터 7월까지는 뉴질랜드에서 수입을 한다.

통가와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지난해 단호박 재배기간 내내 폭우가 지속되면서 흉작이 들었다. 통가에서는 작년 1월 해저화산인 통가훙가 하파이가 분화하면서 강력한 쓰나미가 발생, 해안지대가 초토화되는 등 사태가 벌어졌다. 작년 7월에도 지진이 발생하는 등 파종 시기와 재배 기간에 걸쳐 연이은 악재가 발생했다. 이에 단호박 수입 물량이 대폭 감소한 상태다.

단호박 수입업체 관계자는 “통가와 뉴칼레도니아에서 폭우로 단호박 농사가 아예 망했다고 한다. 우리 업체도 이들 국가에서 수입을 하지 못했다”면서 “1월 말에 뉴질랜드산 단호박이 도착하면 가격이 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후변화와 이상기후로 식량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때문에 식자재를 구매하는 자영업자들은 1년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